두툼한 스테인 냄비를 들고 벗이 찾아 왔다. 어저께 만났을 때 감기로 몸살을 앓느라 몹시 지처 보이는 내 모습에 마음이 아파 불린 쌀 한 움큼에 잣 한 움큼, 두부 한모를 믹서에 넣고 함께 갈아 끓인 죽이라며 그 것이 식을 새라 냄비 채 들고 부랴부랴 이곳까지 달려 왔단다. 한 공기를 따라 먹어 보니 심한 고열에 시달린 탓에 목이 잔뜩 부어 있음에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죽의 따뜻한 감촉이 아픈 목을 한결 부드럽게 해 주는 듯하다. 넣은 재료 모두가 몸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그의 사랑과 정성이 더해져서인가 맛 또한 구수하다. 가슴 속에서부터 울컥 더운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나를 위해 바쁜 아침시간에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차로 이십여 분을 달려 이곳 까지 와 준 그의 마음씀씀이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지처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는 촉매제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까. 웬만하면 그냥 지나쳤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다른 이의 작은 아픔까지도 헤아려 돌아 볼 줄 아는 마음가짐에 감동한다. 진정성 있는 위로는 관계를 튼튼히 이어주는 끈이 된다. 상대방을 높일 때 내가 높임을 받는다. 스스로가 쳐 놓은 교만의 그물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 갈 때 비로소 내 안에 맑은 샘물이 고인다. 누군가가 다가와 한 움큼의 물로 목을 축임으로 갈증을 해소한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이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빛나게 한다.
그로부터 값나가는 푸짐한 선물을 받았다면 이만큼 가슴을 울렸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심한 부담감에 괴로웠을 것이고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그 것을 상쇄 할 수 있을 정도의 무엇인가를 찾아 되돌려 주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싶다.
그들 부부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 교회의 교우가 되면서 부터이니 한 서너 해쯤 전인 것 같다.좀 더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나눔과 봉사의 삶에 주력하고 싶어서라며 서울에서의 분주한 일상을 접고 청주의 한 병원으로 일터를 옮겨 오면서 부터다. 가지고 있는 달란트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들 부부의 눈빛은 순수한 마음만큼이나 맑고 따뜻해 만날 때마다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스로 낮아지기를 자처하며 살기를 즐겨하는 그들과 마음을 나누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삶의 여정 속에 찾아와 준 또 하나의 축복이다.
그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마음에만 품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세상살이가 그리 팍팍하지 많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본다. 과연 나는 이런저런 아픔으로 몸살을 앓는 이웃에게 위로 자가 된 적이,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되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