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2014.02.09 14:27:10

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네 개의 투박한 다리 위에 얇은 송판을 얹어 만든 볼품없는 네모난 탁자.

내게는 식탁 겸 조리대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책상대용이 되기도 하는 그런 탁자가 하나 있다. 대패질도 좀 하고 말끔하게 잘 다듬어서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목재소에서 송판을 켤 때 나온 겉 부분으로 그냥 만든 것이라 손에 닿는 촉감도 마냥 거칠기만 하다. 그나마 멋을 좀 내본다고 탁자 상판을 불에 그슬려 만들어서 조금은 보아 줄만 하다고 할까 그런 탁자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탁자 표면에 드러나 있는 크고 작은 옹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것은 아주 크기도 하고 작은 것들 여러 개가 한군데 모여 있는 것들도 있다. 벌써 몇 년째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옹이.

사전을 찾아보니 나무의 몸에 박힌 나뭇가지의 그루터기. 또는 가지가 난 자리라고 한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거나 가지가 잘려나간 자리에 주로 생긴다는 옹이. 그러고 보면 어떤 옹이는 모진 비바람을 견뎌 내느라 가지가 찢기고 부러져 나간 아픈 흔적들일 수도 있겠고 또 어떤 것들은 새로운 가지를 내느라 빚어진 산고의 결과이기도 하리라.

옹이가 많은 나무는 대부분 위로만 자라지 않고 몸통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가지를 내며 둥글게 자란다. 위로만 자라기를 좋아하는 대개의 나무가 올곧은 선비의 기상이라면 옹이가 많은 나무는 어머니의 품속을 연상케 한다. 무더운 여름날엔 누군가에게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고 길 가는 나그네에게 소나기를 피할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위로만 자라기를 좋아하는 나무들은 비바람과 뇌성에 못 이겨 뿌리 채 뽑히는 경우가 많지만 드넓은 품을 가진 나무들은 휘어지기는 할망정 쉽게 뽑히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저들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로수로 조성된 포풀러 나무에는 유난히도 옹이가 많은 것을 본다. 잘 자라는 습성 탓에 해마다 가지가 잘려나가면서 생긴 옹이다. 봄여름 내내 길러낸 분신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숙명인 양 받아들이며 헐벗은 모습으로 시린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오면 저들은 새로운 가지를 내느라 분주하다. 지난 가을에 생겨난 상처 자국 위에 여러 개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느라 있는 힘을 다한다. 해가 거듭 될수록 늘어가는 옹이를 통해 더 많은 가지를 내고 더욱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본다.

농원 안에 있는 화초 중에도 어떤 것들은 가지를 내려 하지 않고 위로만 자라는 탓에 키만 껑충하니 커서 영 볼품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위로만 자라는 몸통을 잘라 새롭게 심어주고 밑동을 남겨두면 잘려나간 상처 자국이 아물고 그 부분에서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새순이 돋아난다. 그렇게 돋아난 새순들은 잘린 상처 자국을 감싸 안은 채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하나의 상처가 그대로 있지 않고 모진 아픔을 견뎌낸 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햇살과 바람을 아우르며 생명을 키위 내고 있는 것이다.

옹이는 상처다.

상처가 아물어 생긴 옹이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탁자를 바라본다. 저들이 없으면 거피 쪽으로 만든 볼품없는 물건에 불과했을 텐데 옹이가 있어 내 눈길을 머물게 한다. 아름다운 무늬로 변신한 옹이를 보며 내 안을 들여다본다. 살아온 길목 여기저기에 서려 있는 원망과 미움의 덩어리가 빚어낸 상처들이,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질긴 욕심과 집착들로 해 생겨난 볼 상 사나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내 안에 돋아난 상처들도 곰삭아져서 이런저런 삶의 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빚어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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