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의 눈

2014.02.09 14:23:22

김경수

시조시인

배가 고프다. 아내가 귀따갑게 퍼붓는다. 거칠다. 욕이 튀어나온다. 책상을 물고 있는 가장이 있다. 10년을 채우려던 책상물림을 7년 만에 접는다. 남산 묵적골 은행나무 아래 사는 허생의 집 풍경이다.

허생은 글을 읽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백수다. 한심한 양반이다.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인다. 그의 아내가 불만과 원망 속에서 홧김으로 욕이 묻어났으리라. 그는 내친김에 3년을 앞당겨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운종가로가 물었다. 한양 제일 부자가 누구냐. 다방골 변 부자를 일러준다. 허생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으로 변 부자를 찾아가 뭘 좀 해볼 일이 있으니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그런 허생의 당당함을 보고 빌려준다. 얘기에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름도 묻지 않고 또한 돈을 받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큰돈을 갖고 금방 투자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물며 물목과 투자장소를 본다는 건 대단한 안목이다. 성패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집약된 계산과 과감한 배짱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생은 곧장 안성으로 갔다. 안성은 경기와 충청을 어우르는 곳이며, 삼남의 어귀로써 길목이며 요지이다. 안성을 유통의 맥으로 본 것이다. 그는 제수용품에 없어서는 안 될 모든 과일을 웃돈을 주며 사들인다. 시장마다 물결이 출렁거린다. 소문은 급물살을 타고 방방곡곡으로 향하고 또다시 모든 과일은 안성으로 향한다. 얼마 안 가 나라 안의 과일이 동나고 만다. 허생은 씁쓸해한다. 고작 돈 만 냥에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생을 찾기 시작한다. 예전의 값이 아니다. 하늘 높은 줄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허생은 왜 과일을 노린 걸까. 도거리의 한계를 알고 있었던 걸까. 사실 도거리는 모험이다. 매점매석이라는 상도덕에도 문제는 있지만, 수요와 공급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생은 제도에 비판을 던진다. 절대성에 대한 허점과 약점을 찍은 것이다. 모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돈을 벌려면 상인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는 옷감과 농기구를 배에 싣고 제주도로 향한다. 그리고 말총을 산다. 몇 해 안가 말총이 동나고 만다. 망건 없이 어찌 머리를 얹겠는가. 열 배의 값으로 오른다. 허생은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는 다시 바다로 향한다.(생략)

허구에 아이러니한 면도 있다. 고전소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서 본다. 또한, 벗어난 시각은 일축한다. 허생의 눈을 통해 깊은 안목과 통찰력을 보면서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들고 준비된 자가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7년 공부는 실행의 준비과정이며, 집을 나섬은 실행의 계기이다. 변 부자의 만남은 실행의 바탕을 만들기 위함이며, 안성과 제주는 실행의 현장이다.

요즘 일자리 문제로 아우성이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늘 준비하면서 허생의 눈으로 기회라는 희망을 가져 봄이 좋은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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