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 이명식 8대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어릴 적 빚진 '사랑', 이제 갚겠습니다"
한국전쟁 유복자로 누구보다 어려운 삶
"나눔 위한 마지막 불꽃 태울 것" 각오

2013.10.27 20:50:55

인간은 망각(忘却)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을 기억 속에서 감춰버린다. 그 역시 그랬다. 지나온 많은 세월을 또렷이 되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배고픔의 기억만큼은 정확하고도 강렬했다. 뼛속깊이 파고든 보릿고개의 고통은 예순을 훌쩍 넘긴 노신사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었다.

'먹고 사는' 인간의 1차적 본능 해결이 가장 힘들었던 한국전쟁 시절, 뒤주를 박박 긁어 쌀 몇 톨을 나눠주던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사랑을 빚졌다"고 회고하는 이명식(64) 충청에스엔지기술사사무소 회장.

그는 어느덧 성공한 중견 사업가가 됐다. 약관의 나이, 배고픔이 싫어 뛰어든 측량·토목설계 사업이 뜻하지 않은 부(富)를 가져다 줬다.

"홀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의 청주교도소 옆 땅에서 소작이나 산지기를 했는데 이걸로도 제 공부를 가르치기 버거우셨는지 밤에는 삯바느질까지 하셨죠.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선 제가 하루라도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주공고(17회) 광산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까까머리 학생은 제천의 한 탄광으로 취업실습을 나갔다. '금노다지'에서 몇 년간 참고 버티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쾅!' 얼마 뒤 인명 사고가 났다. 아수라장을 눈앞에서 본 18살 사춘기 소년은 더 이상 곡괭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 겁이 났다. 그 후 청원군 기술직 공무원으로 3년을 일하다 군에 입대했다.

"그 때만해도 공무원은 박봉(薄俸)의 대명사였죠. 전역을 했는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지인이 '측량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했어요.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였는데 '까짓 거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뛰어 들게 된 거죠."

무모(?)하게 내던진 사표는 '성공 수표'가 돼 돌아왔다. 24살 때 중매로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이선주씨의 내조가 큰 도움이 됐다.

특유의 성실함을 무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이 회장은 30대 때부터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1997년 국제라이온스협회 356-D(충북)지구 총재, 2000년 청주YMCA 이사장을 거치면서 나눔과 인연을 쌓았다.

50대에 접어들어선 어릴 적 못 다한 학업을 재개했다. 청주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청주대 행정대학원 고위관리자과정, 충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도 잇따라 수료했다. 지금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청주지방법원 민사·가사 조정위원을 맡고 있다.

성실과 나눔으로 정평 난 그를 얼마 전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스카우트'했다. 송옥순 회장에 이어 8대 회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28일 취임식을 앞둔 이 회장은 "생애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며 "개인과 기업의 건전한 기부문화 확산에 주력하는 것은 물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공동모금회를 만드는데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전쟁 유복자로 태어나 누구보다 어려움 삶을 살아온 이명식 회장. 어릴 적 빚진 쌀과 수업료, 아니 사랑을 이제 갚으려 한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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