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는 남쪽의 속리산에서 흘러오는 달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한반도 중부지역의 고갯길인 조령과 계립령이 이어진다.
때문에 일찍부터 동서 수운과 남북 육상교통이 교차되는 요충지로 주목받았고, 정치·경제·군사적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삼국의 문화가 집중되는 중원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고구려는 5세기 후반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해 남진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신라는 557년 국원소경을 설치하고 운영했다.
충주를 두고 각축전을 벌인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과 충주 고구려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소원면 두정리 일원의 고구려 고분 7기와 중앙탑면 루암리·하구암리 고분군, 연수동·용관동 일원의 신라시대 고분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듯 문헌과 금석문 등 유적 자료를 통해 고구려와 신라가 충주를 점유한 모습은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백제와 관련된 자료는 뚜렷하지 않았다.
백제가 충주를 차지했을 당시 충주는 완장성과 미을성으로 불렸다고 전해지지만, 충주 고구려비나 단양 신라 적성비처럼 생생한 명문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탄금대 토성의 철정 40매와 칠금동 제철유적, 중앙탑면 탑평리 일대에서 발견되는 주거유적 등을 통해 백제의 점유 흔적을 단편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백제 한성기 충주를 지배했던 집단의 무덤인 '탑평리 황새머리 고분군'이 지난 2022년 첫 발견됐다.
이 유적은 중앙탑면 탑평리 주거유적과 쌍을 이루는 고분군으로, 5세기경 충주를 지배한 집단의 모습과 마을 풍경을 그려낼 수 있어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유산청의 '역사문화권 중요 유적 발굴조사' 사업을 통해 황새머리 고분군의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를 통해 51기의 고분군이 새롭게 확인됐다.
기존에 조사된 돌방무덤(석실묘), 돌덧널무덤(석곽묘), 움무덤(토광묘) 등 44기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95기의 고분이 분포된 것을 확인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백제적 구조 요소인 돌방무덤에서 신라의 유물이 부장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백제에서 신라로의 문화적 전환 혹은 현지 세력이 중앙과 교류하면서 변화하는 중원역사문화의 특징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이처럼 충주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문화가 융합된 곳으로, 충주지역이 삼국의 문화를 아우르는 중원역사문화권의 맹주도시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중 황새머리 고분군은 충주시가 추진 중인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의 핵심적인 유적이 될 것이고, 향후 훌륭한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황새머리 고분군이라는 유적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학술조사와 연구를 통해 충주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NO충주!, NO중원! 충주에 대한 조사와 연구 없이 중원의 역사·문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