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미술은 1400년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에 영감을 받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했다. 르네상스가 신 중심의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 관심을 가졌고 문화예술이 발달했던 시기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산업화의 발달에 따른 기계적 예술에 벗어나고자 했다. 이를 '라파엘 전파'라 한다. 고전적이고 우아하며 자연스러운 구성이 특징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everett Millais, 1829~1896)는 라파엘 전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탁월했으며 11세에 영국 로열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밀레이는 1850년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신성모독이라는 맹비난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빈민가 거주자와 유사하게 표현했다는 이유였다. 밀레이는 대중적인 공격을 받으며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국의 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이 밀레이의 작품을 찬탄하며 옹호했다. 러스킨의 찬사에 밀레이가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금 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밀레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러스킨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배신하게 된다. 러스킨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들은 러스킨에게 소송을 걸었고 러스킨 부부는 혼인 무효 판결이 났다. 이후 밀레이는 러스킨의 아내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가까운 이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마음속 깊이 사무치는 고통인지 알 수 있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심신이 피폐해진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베풀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과가 배신이었기에 평탄하게 살아온 삶이 완전히 무너지고 쌓아온 것들이 상실되고 만다. 배신이란 하는 이가 잘못된 것이지만, 당하는 이가 더 고통받는 현실이 무겁고 답답하기만 하다. 긴 시간이 흘러 극복되기도 하지만 끝내 배신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아픔을 겪는다. 그것을 극복하고 딛고 일어나면 비로소 단단해진다. 모든 것을 잃기 전에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마음을 주고 믿었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러스킨은 배신을 이겨내고 학문에 몰두했다.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발표를 했으며 영국의 대표적인 평론가로 발돋움하게 되고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들을 용서하고 배신을 이겨낸 것이다. 혼인 무효 이후 학문에 집중하여 삶의 발전적인 방향에 에너지를 쏟았다. 밀레이에 대한 평론을 쓰기도 했다. 이전처럼 찬탄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옹호하는 글이었다. 한편, 러스킨의 아내와 결혼한 밀레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슬하에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고 상업적인 작가로 변모하여 부를 쌓았다. 다행히 모두 긍정적인 결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