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조각보와 서양의 퀼트

2020.11.18 14:24:10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최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소외계층에게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는 봉사 활동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각지대에서는 매일 사용하는 마스크가 여전히 큰 부담이다. 마스크를 만들며 바느질을 공들여 심취해서 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시간도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바느질을 통한 활동이 개인적 흥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쓰인다니 한땀 한땀 만들어가는 시간이 몹시 가치 있게 느껴진다. 바느질을 예전부터 워낙 좋아해서 하나둘씩 바느질을 하며 소품들을 만들다 보니 재봉에도 관심이 생겨 재봉틀과 각종 부자재를 구입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손바느질이 무척 재미있다.

마스크를 만들기 위한 봉사 활동을 해 보니 타인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열정과 정성을 담아 봉사하는 한마음이지만 바느질 솜씨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아주 섬세하게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삐뚤삐뚤 땀이 고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먼 옛날에는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으니 삶에서도 바느질은 유용한 기술임에 틀림이 없었다. 솜씨가 없는 사람도 옷은 꼭 입어야 하니 삵 바느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옷 만들기를 비롯한 조각보, 규방 공예 등의 형태로 바느질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있었지만, 서양에도 '퀼트'라는 바느질이 있다. 바느질을 통해 각종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소품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바느질의 기법이나 과정도 한국의 조각보와 비슷하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이용한 점도 서양의 퀼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조각보는 모시나 비단, 삼베 등 한국적인 원단을 사용한다. 반면 퀼트는 면 소재를 주로 이용하며 누비처럼 솜을 덧대기도 하고 각종 부자재를 쓰기도 한다. 퀼트가 하나의 도안으로 계획하에 정확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조각보는 도안이 없이 소유한 자투리 원단으로 비 계획적으로 만든다. 때문에 조각보의 문양과 색채는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유한 한정적인 자투리 원단으로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작품에서 개인차가 크며 더욱 고차원적인 미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인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에서 조각보의 직선적 형태가 느껴지는 이유도 우리 선조들이 한국적이고 더불어 현대적이며 섬세한 감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바느질이 퀼트와 대비되는 점은 한 작품이 하나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각보 역시 밥상을 덮는 상보, 햇빛을 가리는 가리개의 역할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주머니 종류도 마찬가지이다. 약낭(약을 담는 주머니)이나 향낭(향을 담는 주머니)이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여러모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상당한 지혜로움이 깃든 듯하다. 한국의 바느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용도를 다한 것은 바느질을 뜯어내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바느질은 뒤집을 때 모서리를 잘라내지 않는다. 그 모서리를 직각으로 접어 뒤집으면 모서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뒤집을 때 잘 접어지며 모서리의 튼튼한 각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뜯어냈을 경우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도록 원단이 그대로 있는 이유이다. 특별한 기회에 바느질을 하며 우리네 선조들의 삶을 되짚어 보니 새삼 지혜로움이 느껴진다. 물자가 귀한 시절, 원단을 알뜰히 활용하며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과 활용성에 대해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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