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감정치유 강의에서 만난 박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 여인은 결혼 후 채 1년도 안 되어 남편과의 사이가 삐거덕거렸고, 두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커갈수록 남편을 더 멀리하고 자녀들에게만 정을 붙이고 자녀들과만 친하게 지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과의 사이는 더 멀어졌다. 그러다 두 자녀가 다 출가를 했다. 드디어 일이 터진 것이다. 그동안은 남편과 이야기할 때 자녀들을 통해서라도 즉 자녀들이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중계방송을 함으로써 그나마 소통을 했지만 이제 그것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려 20여 년 이상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서로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사실 그런 연유로 박 여인은 감정치유 강의에 참석하지 않았나 싶다.
박 여인의 아버지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었으니 얼마나 공부가 쉽고 또 잘했겠는가.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공부가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자녀들의 성적에 관심이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성적에 관심이 많은 것이야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자녀들이 시험을 치른 후 성적이 기대 수준 이하이면 성적표가 공중으로 '휙!휙!' 날아다녔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품행에 관해서도 야단과 지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린 자녀들로서는 그런 상황들이 얼마나 싫었고 또 생각만 해도 겁이 났겠는가. 그러다 박 여인은 결혼 적령기가 되어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 후 남편과 그런 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박 여인은 남편과 그 같은 관계가 형성된 원인으로 남편이 꼭 친정아버지처럼 야단과 지적을 잘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박 여인의 그러한 진단이 적절할까· 박 여인의 진단처럼 남편이 정말 친정아버지처럼 야단과 지적을 잘하여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는 아론 벡의 인지행동치료 이론과 제프리 영의 심리도식(틀)치료 이론으로 진단할 경우 달리 진단할 수 있다. 두 심리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심리적 고통은 인생 초기에 가정이나 사회(또래친구, 학교, 선생님, 매스컴 등)에서의 적절치 못한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부적응적 심리틀(도식, 안경)에서 오는 것으로 본다. 그러한 부적응적 심리틀이 사태를 부적응적으로 해석(판단)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분노 등의 감정이 일어나고 또한 그에 맞추어 특정 대처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박 여인은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야단과 지적을 많이 당하고 살았다. 따라서 야단과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틀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민감한 심리틀이 자신도 모르게 작동되어 남편이 여느 남편처럼 조금 야단하고 지적한 것을 가지고 친정아버지처럼 야단과 지적을 잘하는 사람으로 딱지를 붙이고 바라봄으로써 별말 아닌 것에도 화가 나고 그렇다 보니 점차 관계가 악화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