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金庾信, 595~673)묘의 십이지신상 중 뱀신상의 탁본.
ⓒ국립민속박물관
[충북일보]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乙巳年)'이 밝았다.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풀면 마흔두 번째 해인 을사년(乙巳年)은 '을(乙)'이 10개의 천간 중 청색을 표상하고, '사(巳)'가 십이지 중 여섯 번째인 뱀을 의미하기 때문에 '푸른 뱀의 해', '청사(靑蛇)의 해'라고도 부른다.
뱀이라고 하면 보통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맹독을 뿜어내는 뾰족한 독니, 성경 속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만든 사악한 존재, 털이 없고 미끈한 비늘로 덮인 몸에 날름거리는 혀,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 등을 생각하며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와 반대로 재치있고 총명한 이미지, 강인한 생명력 혹은 권력과 풍요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친근하지 않은 외모를 뒤로 하면 뱀은 허물을 벗으며 평생을 성장하기도 하고, 겨울잠을 통해 혹한기를 이겨내는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하며, 많은 수의 알을 낳는 난생 뱀은 뛰어난 번식력을 자랑한다.
최근 한국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 '뱀'에 따르면 우리 전통문화에서 뱀은 막연히 두렵고 혐오스러운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사와 영생, 풍요와 다산, 재물과 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민속신앙에서는 집과 재물을 지켜주는 신적 존재로 자리잡기도 했다.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을 맞아 우리 전통문화에 담긴 뱀에 대한 다양한 관념과 의미를 소개한다.
◇활동적이고 뒤끝 없는 성격의 뱀띠
뱀띠의 음양오행은 양화(陽火), 물상으로는 맹렬한 불꽃 화염(火焰)의 성질을 띤다. 그래서 뱀띠로 태어난 사람은 이미 양기(陽氣)가 가득한 뱀의 속성을 타고난다.
사(巳)는 불꽃이 맹렬히 타오르고 매우 역동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뱀띠인 사람은 사통팔달로 매우 활동적인 데다 성격이 분명하고 명확하며 뒤끝이 없다고 한다. 외국과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고 기본 성정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불사와 영생, 풍요 및 다산과 관계가 깊다.
특히 을사생은 재치가 있으며 감수성과 창의성이 좋아서 문학과 예술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뱀띠와 화합하는 띠는 원숭이띠·닭띠·소띠이고, 충돌하는 띠는 돼지띠이며 애증이 교차해 원진살(怨嗔殺)이 되는 띠는 개띠다. 원진은 서로 애정이 있지만 미워하고 원망도 한다는 뜻이다.
민화 십이지신도, 세로 144.2cm×가로 77.6cm. 윗줄 왼쪽 첫 번째가 뱀.
ⓒ국립중앙박물관
◇'지혜로운 아이' 의미하는 뱀 태몽
뱀이 나오는 꿈의 해석은 다양하다. 주로 뱀꿈은 지혜와 재물, 권력과 명예, 생명과 치유·풍요로움을 상징하고 부정적으로는 유혹과 파멸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뱀에게 발목을 물리는 꿈은 큰일을 이루거나 모든 경쟁에서 무난히 이기는 길몽인 반면 몸을 감고 있던 뱀이 스스로 풀고 사라지는 꿈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날리고 가난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꿈에서 뱀은 대부분 태몽과 관련되는데, 진취적이며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로운 자손을 얻게 된다고 한다.
커다란 뱀을 보는 꿈은 이익을 남기는 사업을 하게 되고, 태몽이라면 효성이 지극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을 암시한다.
치마 속으로 붉은 뱀이 기어서 들어오는 꿈도 태몽으로, 장차 강인하고 정열적인 인물이 될 아이를 낳게 될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이 뱀과 관계하는 꿈은 누군가와의 동업 관계나 계약을 맺게 되거나 장차 대성할 자식을 낳는 것을 의미한다.
◇집안 재물 지키는 재복신 '업구렁이'
우리나라의 가택신앙에서 재물을 지켜주거나 늘려주는 신이라 할 수 있는 '업(業)'은 집에서 가장 높은 지붕에서 사는 것이 특징이다.
다년간 집에 붙어서 살고 있는 동물인 업의 모습은 지역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여러 동물 중에서도 뱀(주로 구렁이)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을 근간으로 한 농경사회였다. 들에서 농작물을 해치고 집에서 곡식을 축내는 쥐는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들쥐·집쥐·두더지의 천적인 구렁이는 재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재복신으로 여기기는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업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반기지 않았다.
업구렁이가 보이면 집안에 좋지 않을 징조라고 여겼다고 하고, 망할 집에서는 업구렁이가 나간다고 한다는 속담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믿음은 신적 존재로서의 뱀과 기피 대상으로서의 뱀 등 이중적인 인식이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숭배의 대상이지만 실제 생활에서 뱀의 출현을 반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기피하는 것과는 별개로 집에서 구렁이가 나타났을 때 죽이지 않고 살려보냈다. 업을 함부로 대하거나 잡는 경우에는 집안이 망하거나 재물을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속 문학 속에서 만나는 뱀
뱀은 호랑이, 여우만큼이나 한국 민속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어 익숙한 존재였다는 방증이다.
자주 다뤄지는 만큼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다. 영물일 때도 있고 사악한 존재일 때도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뱀이 사적에 나오는 최초의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사릉(蛇陵)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뱀은 영물이자 수호신의 역할로 등장한다. 사릉에는 '(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왕후 역시 죽었다고 한다. 나라 사람들이 왕과 왕비를 합장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서 내쫓아 못하게 하므로 오체(五體)를 오릉(五陵)에 각각 장사지내고 역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니 담엄사 북쪽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뱀은 퇴치돼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을 접해봤을 설화 '은혜 갚은 까치'가 대표적이다.
나그네를 죽이려는 구렁이를 까치가 물리쳐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기본 골조다. 이 이야기에서 구렁이는 반드시 물리쳐야할 존재로 인식된다.
조상들은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구렁이가 더 성장하면 이무기(이시미)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고 믿었다. 다사다난한 일들로 어두웠던 갑진년을 뒤로 하고 을사년은 성장과 도약이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훗날 더 큰 성과를 얻게 되는 발판이 되기를 기원한다.
/ 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