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성탄절이다. 과거에는 12월만 되면 캐롤 송이 어디를 가든 울려 퍼졌는데, 요즈음은 이런 것도 옛말이 되었다. 크리스마스하면 우리는 산타 클로스, 크리스마스 트리, 캐롤 등을 떠올린다. 어릴 때는 양말을 걸어놓고 자면 산타 클로스가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잠을 청한 적도 많았다. 또 온 가족이 모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며 행복해 했었고, 함께 캐롤 송을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지금 생각 하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특정 종교인들 만의 축제는 아니다. 모두의 축제이고 누구에게나 축복의 날이다. 그래서 만나면 누구나 서로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한다. 이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것, 바로 이런 정신이 예수의 사랑일 것이다. 기독교에선 믿음, 소망, 사랑 중 그중에 최고가 사랑이라고 한다.
예전에 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못 박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는 자신에게 시련을 주는 하나님에게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원망을 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 존재이면서도 자신을 못 박고 있는 사람들이 짓는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의 사랑의 정신을 보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주라는 말 이런 말들이 참된 사람의 실천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점점 이기적으로 바뀌고 있고, 타인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교육계도 마찬가지이다. 교육 공동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보게 된다. 교육은 사랑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지식 전달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교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줘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그냥 비난이고, 힐책일 뿐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학생이 교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중할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밧줄이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운집해 있는 군중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공동체든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교육 공동체는 특히 사랑이라는 밧줄로 서로를 이어야 한다. 잇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소통이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서로 소통한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랑은 없다. 감정 섞인 사랑도 없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과는 소통할 수 없고, 감정이 전제되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소통은 합리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도 있다. 누구든 이를 실천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이 있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물에빠진 아이를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하였다. 따라서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연말연시이다. 눈을 돌려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이웃도 많고, 우리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 한번이 그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사랑은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축복과 사랑이 충만하길 기원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