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민의 삶의 기억을 기록으로

생각의 생각

2024.07.02 14:45:40

정초시

충북도 정책수석보좌관

카아(E.H.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고 있는데,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역사이지만 시저 이전과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어도 그것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왜일까? 왜냐하면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넌 것은 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지고 황제의 국가가 되어 사회변화를 초래한 역사적 사건을 불러왔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이지만, 기타 많은 사람들이 건넌 것은 일상일 뿐이며 사회변화를 전혀 초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류역사에서의 역사기록물을 보면 대부분 왕실의 기록이거나 전쟁영웅, 학자들, 혁명적 사건들 등 사회변화를 가져왔거나 대체로 상류층의 사람들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주로 왕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물이다. 그래서인지 민초들의 삶과 그들의 애환은 근근이 구전으로 이어져오거나 아예 없어져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역사를 이끌어갔던 핵심적 인물 및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물을 남겼던 이유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 민초들의 삶의 중요성이 낮게 평가되었고 동시에 텍스트로 기록하는데 따르는 높은 사회적 비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인간의 지적 자산을 기록을 통하여 다음세대에 전수함으로써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지식의 축적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가능해지는 지식의 선순환이 문명의 발전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를 해독해야 하고 양피지 및 종이 등의 생산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기록의 양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술의 발전과 교육수준의 향상 등이 일어났으며, 급기야 컴퓨터혁명을 통하여 각종 기록의 무한 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들도 텍스트로 기록에 남기는 일이 매우 용이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문자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문해 능력, 기록형식의 숙지, 시간과 노력의 소요 등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텍스트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바뀌면서 음성과 몸짓으로 자신의 삶의 흔적을 무한대까지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충북에서는 영상자서전이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범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는 충북인들의 기억을 동영상으로 남기려는 사업으로, 시작한지 약 1년 만에 1만 건의 업로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삶이 머릿속 기억으로는 있지만, 남겨진 기록이 없어 다음 세대에까지 기억이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애절함과 후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점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기록을 남길 권리와 자기 존중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보편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즉, 인생의 끝자락을 살고 있는 노인들의 삶을 영상으로 남겨 후손들과 기억을 공유할 뿐 아니라,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지만 인생 단계의 모든 분야에서 기록에 남길만한 것들을 스스로 판단해서 영상기록으로 남기자는 운동이다.

"노인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영상자서전 운동은 충북 도민 모두는 스스로 역사에 기록될만한 소중한 존재,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영상으로 기록된 것들은 비록 소소하고 개인사에 불과할지라도 수없이 많은 삶의 패턴과 다양한 경험의 보고가 되어 장차 충북의 값진 문화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다행히 빅 데이터 기반의 AI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무리 많은 영상자료라도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으며, 향후 축적된 충북의 영상자서전이 충북인 모두가 참여하는 충북인의 대표적 브랜드가 될 것이다. 축적된 영상문화자산이 문화콘텐츠가 되어 충북에서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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