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지하차도 참사 책임자 '중형'… 법원, "형량 더 높았어야"

법원, 현장소장 징역 7년 6개월, 감리단장 징역 6년
정 부장판사"오송 참사는 자연재해 아닌 중대한 과실로 발생 한 것"
유족, 피고인들 형량 판결에 '만족'

2024.06.02 15:59:13

[충북일보]"사망한 피해자들이 겪었을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기록으로만 접한 법관은 감히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지난 5월 31일 오후 2시 청주지방법원 223호 대법정.

이날 법정에선 바흐(J.S.Bach)의 칸타타 106번 소나티네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7월 30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청주지법 형사5단독 정우혁 부장판사는 재판에 앞서 법정에서 이 곡을 틀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칸타타 106번 소나티네는 장례 칸타타로 젊은 시절 바흐가 가까운 이의 죽음을 대하는 깊은 감정이 담겨있는 곡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5개월 넘게 담당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해 7월 15일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음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법정은 숙연해졌다.

현장소장과 감리단장의 1심 판결이 끝난 뒤 유족들이 청주지법 법정동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성민기자
방청객들은 숨죽여 희생자들을 애도했고, 유족과 생존자들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날 재판대에 올라선 피고인은 사고 주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 부실 관리의 책임자인 현장소장 A(55)씨와 감리단장 B(66)씨였다.

정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증거위조교사, 위조증거사용죄 등 혐의로 기소된 미호천교 임시제방 공사를 총괄한 A씨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에게 선고된 형량은 법정 최고형에 해당하는 형량이다.

A씨는 재판 내내 설계에 따라 임시제방을 쌓았고 기존 제방을 무단으로 절개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해 왔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임시 제방을 축조할 당시 관계기관 허가를 받지 않은 데다 규정도 지키지 않았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임시제방을 축조한 건지 모르겠다"며 "이를 대변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도 없을뿐더러 임시제방을 기존 제방과 동일한 규격대로 축조했으면 강물이 월류해 제방이 유실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재판부는 A씨가 높이 32.65m의 기존 제방을 임의로 허물고 어떤 기준도 없이 부실하게 축조한 높이 29.63m의 임시제방은 기존 제방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법정 기준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 부장판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홍수 방호벽 설치를 위해 1억 2천만원의 공사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제방 시설을 축조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뻔뻔하게도 존속 기간이 짧다거나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임시제방 축조에는 완화된 측정 방법과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며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임시제방을 기존 제방 규격대로 세웠거나 최소 사고 전날에라도 임시제방 보수를 했다면 이런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임시제방 인근에 피고인의 부모와 자녀 그리고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때도 제방을 튼튼하게 축조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정 부장판사는 임시제방을 부실하게 쌓아 올린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B(66)씨에게는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건설 공사를 실질적으로 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거나 책임을 다하지도 않았다"며 "미호강 범람은 묵인과 방임, 적극적인 협력이라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것이지 자연재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선고를 마친 정 부장판사는 이들에게 내려진 형량은 법정 최고형으로도 부족하다며 형법 체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고인들이 받는 모든 혐의의 형량을 더해 선고하는 것이 여러 혐의 중 가장 죄책이 무거운 형량의 절반만 가중하도록 한 경합범 규정인 형법 제37조, 38조 등에 따라 법정 최고형을 초과하는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는 현행법 체계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

정 부장판사는 "솔직하게 피고인 A씨와 B씨의 죄책에 상응하는 형은 최소 징역 15년, 12년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형법상 그에 합당한 형량을 선고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법관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개탄했다.

이어 "다수가 사망한 것과 한 명이 사망한 것이 아무리 하나의 사고라도 같다고 볼 수 있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입법부와 국민께서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추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죄책에 부합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이날 선고 직후 유가족들은 피고인들의 형량 판결에 만족을 표했다.

참사로 희생된 747번 버스 기사의 아들 이중훈씨는 "법에서 허용하는 최고의 형량이 나왔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등 단체장들도 6월 중으로 반드시 기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임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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