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준비의 기술

2020.01.12 15:55:11

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오늘 저는 강사님 말씀을 듣고 큰 걸 깨달았습니다." "아~ 그래요· 저는 특별한 말씀을 드린 건 없는 거 같은데요. 무슨 말씀을 갖고 그러시는지?" 지난 주 예비은퇴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어느 수강생과 나눈 대화다. 그분의 말씀은 이랬다. 퇴직금 중간정산 받은 돈으로 오피스텔을 한 채 사서 임대를 놓았고, 은퇴하면서 받을 나머지 퇴직금으로도 오피스텔을 한 채 더 구입할 계획이었단다. 그런데 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추가로 구입하는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임대료는 고스란히 건강보험료로 나갈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럼 남는 것도 없을 테고 지방 오피스텔의 가치가 많이 올라갈 것 같지도 않으니, 굳이 사서 보유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못된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분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분의 주된 직업은 회사원이었다. 임대업은 부업이었던 것이다.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이 직장가입자로 되어 있어서 직장에서만 보험료를 내면 그만이었다. 임대업에서 들어오는 월세는 재산세와 중개보수를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순수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은퇴를 하면 직장가입자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은퇴 후 직장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한층 강화된 소득과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피부양자가 될 수 없고 지역가입자로 가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보유하고 있는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상당한 금액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은퇴로 인해 변화되는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임대료 늘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퇴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소득단절, 일의 단절, 인간관계의 단절, 소속의 단절 등은 물론이고, 건강보험도 직장가입자 자격을 상실하고 지역가입자나 피부양자로 옮겨야 한다. 세금을 내는 것도 그동안은 회사에서 구비서류 안내해주고 처리까지 해주었지만 은퇴한 다음날부터는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아무것도 몰라도 세월은 가고 은퇴는 하게 된다. 모르고 있으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막막할 것이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거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앞의 사례에서 만약 그 수강생이 오피스텔을 추가 구입한 뒤에 건강보험료 부담내용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까?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려 할 것이다. 그럼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되돌릴 수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선택은 어느 한 쪽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반드시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한다. 어느 한 쪽에서는 유리한 선택이 다른 쪽에서는 훨씬 더 크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도 있다. 게다가 되돌릴 수 없기까지 한다면 그 한 번의 선택에 대해 얼마나 후회할 것이며, 초래되는 비용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이런 후회와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임대업을 하되 아주 크게 할 게 아니라면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안내도 되는 정도의 경계선까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기술이다. 앞에서 사례로 든 수강생은 이번 교육에서 그 기술을 배웠다. 은퇴준비를 하면서 배워야 할 기술은 갈수록 많아지고, 은퇴 후 맞게 되는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이번 과정의 수강생들은 임금피크제에 진입하였고 앞으로 2년 반 뒤에는 은퇴를 할 사람들이었다. 2년 반, 길다면 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은퇴준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회사에서 다 챙겨주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5시간 동안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은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며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고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이들에게 생각하고 준비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은퇴준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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