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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그 수강생은 마치 강사의 머리에 빨대를 꽂고 있는 것 같았다. 강사의 머리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빨아내려 하고 있었다. 은퇴가 임박한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퇴준비 교육 현장에서의 일이었다. 모두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그중 한 수강생은 진지하다 못해 너무 열정적이어서, 궁금한 것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까지도 강사가 다 알려주기를 갈망하고 있는 듯했다.

한마디로 '절박하다'라고 할까. 이들은 한 달 후면 정년퇴직을 할 사람들이다. 지난 30여 년간은 안정된 직장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아가며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월급은 끊기거나 밀린 적이 없었고 해마다 올랐다. 승진을 위해 경쟁하기는 했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한 살벌할 정도의 경쟁은 없었다. 세금 문제나 건강검진 같은 것들도 때가 되면 회사에서 알려주고 챙겨주었다.

이제 퇴직을 하면 이 모든 것들이 변하게 된다. 우선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끊기게 된다. 물론 그동안 모아 놓은 돈도 좀 있고 부동산도 가지고 있지만, 월급만큼 안정적이진 못하다. 아침 먹고 출근할 곳이 없어진다. 그동안은 지긋지긋하기도 했던 출근길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비록 경쟁의 상대이기는 했어도 만나면 동지 같았던 동료들도 곁에 없다. 주위에서 도와주거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서 다가오면 혹시 사기꾼이 아닌지 불안하다. 경제활동을 해야 할 때는 어쭙잖은 일자리 하나를 놓고도 심한 경쟁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은퇴 후 생활이 이렇게 험난하다면 나가기 전에 그에 대한 대비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여러 해 동안 교육을 받아 온 것처럼 은퇴생활을 위해서도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는 직원들이 현직에서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한 교육에는 관심이 있지만, 직원들의 퇴직 후까지 생각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회사의 성장을 위해 헌신해 온 직원들을 험한 세상으로 내보낼 때는, 그에 대한 준비를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서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은퇴교육을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미하다.

이를 반영하듯 직장인들의 은퇴준비, 노후준비 실태에 대한 조사결과들을 보면 직장인의 절반 정도가 은퇴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은퇴준비까지 할 만큼 소득이 많지 않아서'와 '자녀교육 때문'이라는 응답들이 다수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는 응답도 많다고 한다. 모르면 스스로 찾아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럴 동기도 낮고,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른다. 답답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면 대부분 금융상품 판매와 연결되는 정보들뿐이다.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우리 공단에서는 2010년부터 국민을 대상으로 노후준비에 대한 교육과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특정 금융회사나 상품의 홍보는 할 수 없으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109개 지사에 '지역노후준비지원센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회사나 단체에서 신청하면 원하는 곳으로 찾아간다. 회사입장에서는 은퇴교육을 위해 근무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손실이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은퇴 후까지 챙겨주는 회사에 대해 직원들의 충성심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교육을 10년 전에만 받았었더라도 참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는 수강생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10년 전에 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만족해할까· 아니다. 그때는 그들이 지금처럼 절박하지 않을 때였다. '은퇴가 아직 멀었는데 뭔 은퇴교육을 벌써 받아' 하는 게 10년 전 그들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절박해야 교육내용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린다. 10년 전 그들은 은퇴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은퇴가 다가왔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임금피크제 진입시기'와 '퇴직 직전'에는 은퇴교육의 수용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이렇게 두 차례 정도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때 교육받은 수강생들은 회사와 담당자에게 매우 고마워한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는다. 이미 늦었다고 필요 없는 교육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절박한 상태에서 받는 교육이라 수용성이 매우 높다. 강사의 머리에 빨대를 꽂고 있는 그 수강생처럼…. 그날 나는 소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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