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결' - 젓가락, 영원불멸한 것은 있다

2017 젓가락 페스티벌

2017.12.07 16:30:34

600년 전 한국의 부엌 모습과 국수 만들기.

[충북일보] 축제는 끝났다. 긴 여운을 남긴 젓가락페스티벌이다. 무대에 불이 꺼진 후에도 SNS상은 덕담을 주고받느라 훈훈하다. 어떤 이는 우중충한 담배공장에 무슨 축제냐고 묻는다. '젓가락 페스티벌'은 젓가락만 전시된 것이 아니고, 재미와 흥미가 넘치도록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과연 직접 가보지 않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감흥을 알 수가 없다. 축제의 장은 수암골 좁은 골목처럼 골목마다 무언가 나올 듯 호기심이 일 듯한 공간이다. 좁고 긴 전시 공간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숨바꼭질하듯 창조학교가 펼쳐진다.

2017젓가락페스티벌이 열린 옛 연초제조창 2층 공간.

젓가락 페스티벌 초입에 전시된 수많은 백자 그릇과 중앙에 배치된 수저가 시선에 든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이다. 예전 어머님들이 정성스레 지은 밥과 국을 무수히 담았을 그릇과 거기에 담긴 음식을 인간의 입으로 옮겼던 신성한 도구이다. 수저를 바라보며 기원한 이의 마음결을 읽는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예우한 것은 아마도 영생불멸하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 보면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은 한 줌 흙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장인이 만든 수저는 후인 앞에 내로라하게 전시되고 있잖은가. 그러니 예술은 긴 것이 아니라 영원불멸한 것이다.

젓가락은 시공간을 넘어 생명성과 영원성을 갖는다. 인간의 삶에서 생과 사, 경계를 넘나드는 물건이라 여기니 순간 전율이 일어난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을 돌아보면 알리라. 젓가락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로써 큰 역할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태어나 어느 즘에선 젓가락질을 배워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사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왕릉 발굴에서 무덤 주인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무수히 발견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있다고 믿고 수저와 그릇 등을 묻었지 않았나 싶다.

청주는 교육의 도시이자 직지의 본향이다. 책과 교육은 젓가락 한 쌍처럼 중요하다. 2017 젓가락 페스티벌 창조학교에는 향수가 느껴지는 사진전과 각자전, 고서전 등 다양한 콘텐츠가 펼쳐진다. 어찌 보면, 젓가락과는 전혀 무관한 콘텐츠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왜 여기에 창조학교가 열리는지 이해되리라. 청주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인쇄술을 보유한 고장이다. 거기에 걸맞게 청주시는 책의 도시로, 출판의 고장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디 그러한가. 아쉽게도 변변한 도서관도 문학관도 없는 실정이다. 선인들이 일궈 놓은 최고의 인쇄술 고장답게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발전 계승되어야 한다.

젓가락의 역사와 삶의 문화를 전하는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젓가락 페스티벌 행사는 작아 보이지만 알차고 파급력이 큰 축제이다. 충북 콘텐츠 코리아랩 창조학교에서 열리는 '우리 책 이야기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며 여러 생각이 일어난다. 전시된 고서는 말 그대로 세월의 더께가 앉은 오래된 책들이다. 손으로 만지면 금방이라고 부스러질 듯 낡은 책들. 누군가의 노력이 없었다면, 화장실 밑씻개나 폐휴지로 고물상에 버려질 물건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야금 연주자도 전통음악을 재즈음악으로 한층 더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열정을 다한다. 이 또한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들 그 정신과 혼을 이어가고자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공간의 확장이 눈에 띄는 요즘, '책의 종말'을 단언하는 말은 무색하다. 전시된 고서 200여 권이 조명 빛 아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모든 기획은, 창조학교를 만든 문화기획자이자 창조 아이콘인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총괄코디네이터)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다. 한국의 중요 담배공장이었던 역사적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것을 잠재우고 폐공장에 문화의 불을 지핀 분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도 사랑도 사라진다"라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그 실례로 청주에는 대농 청주공장과 부지 13만 평이 역사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특별기획 수저 100인전-불멸의 도구, 삶의 의미를 담다.

분디나무로 젓가락을 만드는 시민.

1970년대 중반 대농 청주공장에는 수십만 대의 생산시설과 양백여상이라는 학교가 존재했던 적이 있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청춘을 불사르며 미래를 꿈꿔나갔던 시절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소비재로 무장한 고층아파트와 백화점이 우뚝 서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주변의 생산시설이 불편하다고 민원을 넣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산업공단의 존재도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말대로 과거 청춘의 땀과 희망이 녹아있던 어마어마한 공간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시절 그리운 생애 흔적과 문화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힘겨운 과거를 딛고 성장하였기에 현재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공간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진다'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우리의 삶에 희망과 사랑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생각만 해도 참으로 슬픈 일이지 않은가.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가. 전시장에 고사리 손들이 젓가락을 만드느라 북적인다. 아이들이 청주문화를 온몸으로 체험 중이다. 누군가가 잠 못 이루고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불 꺼진 담배공장에 어엿이 젓가락 페스티발이 열리고, 시민들과 세계문화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은자처럼 어딘가에 묻혀 있던 장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삶의 의미가 담긴 불멸의 도구 특별전시가 청주문화 전통의 결을 잇고 있다. 선인은 사라지고 없어도 후인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통 중이다. 예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것을 만들게 한다. 작가의 시대정신과 혼이 깃들어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영원성을 띠게 된다. 장인이 남긴 수저에서 그의 숨결과 마음결이 느껴지니 문화는 정녕코 영원불멸한 것이다. 젓가락으로 만나는 축제의 장은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진화하여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었으면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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