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결' - 청주읍성(淸州邑城)

성벽에 깃발이 휘날리길 고대하며

2016.09.08 17:54:56

복원된 청주읍성 성벽 서문.

중앙공원에 옛 읍성의 성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본 사람은 알리라. 약 35m 성벽에 원래의 돌은 얼마 박혀있지 않다. 성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모으고 있다는 안타까운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수많은 성돌이 문화유산인 줄 모르고 누구네 댓돌로, 주춧돌로, 빨래판으로 훼손되고 있다. 성곽의 돌이라 확인되는 돌은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가. 청주읍성을 복원할 성돌이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는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이다.

복원된 청주읍성 성벽 서문 내벽.

청주는 내가 태어나고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터다. 이 땅에서 삶을 이어 온 선인들이 역사와 문화를 남겼듯 앞으로도 대대손손 이어가리라. 존재의 뿌리 없이 이곳에 내가 자리할 수 있는지를 돌아본다. 깊이 성찰할수록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무지함을 벗고자 주경야독으로 청주읍성에 관한 강의와 학술세미나를 듣고, 주말에는 관련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덕분에 청주 문화유산을 조금씩 체득하여 가는 중이다.

청주읍성 흩어진 성돌.

성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흔적 없이 사라진 청주읍성은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 덕분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러 건축물과 공원, 유적들이 상세히 기록된 청주읍성도와 남문(南門)과 관련 사진 두 장이 과거를 대변한다. 전남 구례의 운조루에 소장된 '여지도' 속에 포함된 '청주읍성도'는 청주읍성의 형상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남북으로 긴 장방형 구조에 동서남북 성문이 곳곳에 자리한다. 북쪽에는 동헌과 객사가 나란히 배치되었고, 읍성의 중앙에는 사창이 위치하며, 아래에는 충청도 병영이 자리를 잡았다. 과거 삼국이 청주를 차지하고자 각축전을 벌인 역사나, 여러 가지 정황상 행정과 교통,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찍은 남문 사진은 사진 자료의 상태가 선명하지 못하다. 하지만, 팔작지붕에 겹처마, 성문의 크기와 구성 등을 알 수 있단다. 사람들이 성문을 드나들고 누각에 앉거나 서 있는 형상이 보인다. 다른 한 장은 문루의 처마부분인 청남문(淸南門) 현판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사진이 남아 사료로 읍성의 남문 복원도 가능하리라 본다.

얼마 전 청주읍성에 관련 강의로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홍주읍성(洪州邑城)을 탐방한 일이 있다. 홍성읍성은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단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기록뿐이다. 그런데 홍성 지역주민의 문화유산 사랑은 무엇과 비길 데가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홍주읍성 조양문.

시내 중심 거리에 동문 조양문이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동헌이 풍취 좋다. 성곽도 길이 약 1천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 일부분이 남아있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성곽을 돌아보며 부러움을 가득 안고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홍주읍성 성곽에 휘날리는 붉은 깃발.

청주의 역사와 함께해온 청주읍성은 청주가 1천300여 년의 역사를 갖는 고도임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있다.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철당간,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청주 청녕각, 청주 망선루,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청주 척화비 등이 있다. 그 외에 땅 속에 묻힌 남석교와 장옥 등 비지정문화재가 다수이니 문화유산의 보고인 청주이다.

읍성 안 중앙공원이 청주 문화의 중심지임을 깨닫게 한다. 공원은 그냥 쉼터가 아니다. 그러니 청주의 역사와 문화, 옛 향취와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청주 시민이라면 중앙공원을 찾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수형이 웅장한 900살 먹은 은행나무, 압각수가 터줏대감처럼 공원에 존재한다. 가을이면 전등을 환하게 켜놓은 듯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을 보고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족 단위로 무시로 찾아들던 곳인데, 요즘은 노인들만 찾고 있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예전처럼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쉼터로, 청주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소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과 행사가 펼쳐져야 하리라.

올해로 청주성탈환 424주년을 맞는다. 청주성 전투는 1592년 8월1일 의병장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의승장 영규대사가 중심이 되어 승리를 이뤄낸 전투이다. 탈환 일을 기념하고자 그가 생전에 노닐던 보은과 후학을 가르쳤던 옥천 후율당에 이어 왜군과 장렬히 싸우다 숨진 금산 칠백의총까지 '조헌의 길'을 걸었다. 의병장 조헌(趙憲, 1544∼1592)의 발자취를 따라가니 청주읍성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절감한다. 청주읍성을 쌓고자 성돌을 하나씩 올렸을 선인의 노고와 목숨을 바쳐 청주성을 탈환한 승병장 영규대사와 의병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후인은 읍성의 유구한 역사적 의미를 알고 옛 성돌 하나 티끌하나도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청주읍성큰잔치.

청주읍성도를 따라 18세기 읍성 기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눈앞에 읍성이 존재하지 않아도 상상 속 여행이라도 좋다.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고 숨결을 잇는 작업은 여럿이다. 대구 지역처럼 읍성이 존재했던 자리에 곳곳에 깃발이든 도로든 곳곳에 표식이 필요하다. 더불어 청주읍성의 다양한 콘텐츠와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만 한다. 그곳에 청주의 역사와 관련 인물 및 고유의 문화를 스토리텔링으로 숨결을 느껴 보는 일도 좋으리라. 이러한 관심과 노력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 여겨진다.

주말 인적이 드문 공원의 서문 성벽을 찾는다. '청주읍성'을 제대로 알고자 하나둘씩 모여드는 시민을 보니 반갑다. 성벽 위에 붉은 깃발이 힘차게 휘날리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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