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를 선택한 김승현

2017.06.11 14:39:05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김승현은 미혼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기가 곤두박질친 비운의 스타다. 1981년생, 우리나이로 이제 겨우 서른일곱인 잘생긴 이 청년은 지난 2003년 기자회견을 통해 세 살짜리 딸이 있는 미혼부임을 고백했다.

딸의 실체를 밝힌 것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잠복하듯 집에 드나들던 기자가 딸이 있음을 눈치 채고 기사를 쓰겠다며 압박했다고 한다.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 배우의 삶을 특종욕심 외엔 아무 생각이 없었던 한 기자가 뿌리 채 흔든 것이다.

딸을 얻게 된 것도 물론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얼떨결에 아버지가 되어 몇 년 동안 살얼음판을 걷던 스물두 살의 김승현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지, 기가 막혔을 상황에 가슴이 먹먹하다.

여자친구가 출산 후 키울 수 없다며 넘긴 딸은 김승현의 부모가 딸로 입적해 양육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자 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소속사 대표는 일단 숨어있으라고 했단다. 부모님도 자식이 아니라고 하라며 말렸다.

그러나 도저히 어른들의 충고에 따를 수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한 아이의 아빠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모든 인기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회사는 해체되고, 열광하던 팬들은 등을 돌렸다. 1997년 '렛츠' 모델로 데뷔해서 KBS '뮤직뱅크' MC 등으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던 하이틴 스타의 몰락이었다.

그 후 김승현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몇 달 전 종편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와 8년 전 소개팅을 했던 희한한 인연을 밝혀 잠깐 관심을 받았으나 곧 시들해졌다.  

그런데 거의 잊혀가던 김승현이 기사회생할 조짐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팬심과 갈라놓은 딸로 인해서다. 김승현은 최근 방송된 KBS2 '살림하는 남자들2'의 새 식구로 합류하며 미혼부의 삶을 공개했다. 벌써 열여덟 살이 된 딸의 모습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부녀 사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딸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넘치지만 아직 터무니없이 젊은 아버지는 동생 같은 딸을 다루기엔 힘이 달린다. 조부모와 살고 있어 띄엄띄엄 아버지를 마주하는 여고생 딸도 아버지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데면데면하고 퉁명스런 딸의 대응에 어색한 소녀의 마음이 읽혀진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면 버릇없는 딸의 모습은 지적받을 그림이겠지만, 지금 시청자들의 반응은 격려 일색이다. 자식을 책임진 사람이 칭찬대신 욕을 먹었던 지난날을 위로하는 성숙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김승현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미혼부 김승현은 제일 힘들었던 점이 딸은 자신의 호적에 올리지 못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미혼부의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낸 발언이다.

자료에 의하면 홀로 자녀를 키우는 미혼부 수는 1만 8천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 2015년 입법화된 '사랑이법'이 시행되기 이전엔 미혼부들은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쉽지 않았다. '사랑이법'은 친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 친부가 DNA 검사확인서로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있게 한 법이다.

여성은 임신 10개월간의 진료기록과 출산 시 의사의 첨부서류로 출생신고가 수월하지만, 친부는 친모 이름만 알고 있어도 직접 친모를 찾아 출생신고 해야 했다. 진술서에 무심코 친모 이름을 적었다가 신청이 기각된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혼부에 대한 관련 지원시설은 어디에도 없다. 미혼부에 대한 육아휴직, 분유나 기저귀 바우처 제도 등의 양육에 대한 지원체계도 전무하다. 이처럼 열악한 처우를 확인하며 국가가 미혼부의 양육 포기를 획책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을 정도다.

김승연은 딸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려움을 감내하며 딸을 선택했던 그가 앞으로는 꽃길만을 걸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미혼부 김승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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