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때문에 불편한 무속인들

2016.10.31 15:36:01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최순실을 지칭할 때 '무당'이 이름 앞에 붙는다. 사기 행적을 보다 못한 김재규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할 백해무익한 놈'이라고 미워했던 사이비 교주 최태민의 딸로 아버지의 주술적 능력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는 것이 알려져서다.

정계와 학계의 구분 없이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지금 한 목소리로 무당의 술수에 놀아난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최순실을 보는 눈 역시 국내 오피니언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 "무속인이자 점쟁이(Shaman fortuneteller)인 최순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최고 권력자를 흔든 '어둠의 충고자'가 있었음을 지적한 외신의 평이 낯부끄럽다.

UPI 통신도 최순실을 주술사로 단정했다. 저승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말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그녀의 아버지에 이어 박 대통령에게 육 여사의 영적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계속했다는 최순실의 주술적 행태를 흥밋거리로 다루었다.

집에서 발로 차며 구박한 강아지라도 남이 눈을 흘기면 심사가 뒤집히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지적사항이 조목조목 한군데도 반박할 여지가 없는지라 연대 벌을 서는 심정이다.

혹자는 조선 후기 고종과 명성황후를 홀린 무녀 박창렬을 최순실과 비교한다.

스스로를 관우의 딸이라 선전한 박창렬은 과부가 되자 호구지책으로 무당이 된 여자다. 임오년군란이 일어나자 분노한 군사들을 피해 명성황후가 충주 장호원에 은신했을 때, 수단꾼 박창렬이 의지할 곳 없었던 불안한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령님이 꿈에 나타나 중전이 장호원에 있다고 알려줬다'며 접근한 무녀는 황후의 환궁을 호언장담했다. 며느리 대신 권력을 장악한 흥선 대원군이 원세개에게 납치되어 청나라로 압송되면서 실권하게 되자, 황후는 피신한지 50일 만에 궁으로 복귀한다. 황후의 복권을 예언한 무당 박창렬은 그때부터 황후의 그림자가 됐다.

황후는 박창렬에게 왕의 장인 정도에게만 내렸던 엄청난 작위인 진령군(眞靈君)이란 작호를 내리고 신임했다. 진령군이 된 무녀는 왕실을 굿판으로 만들었다.

구한말 학자 황현이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쓴 기록물인 '매천야록'에 고관대작들까지 앞을 다투어 진령군에게 아부한 사실이 적혀 있다. 진령군을 누님이나 어머니라고 부르며 줄을 대기 위해 아양을 떠는 자가 흔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절대 권력자인 진령군을 규탄한 올곧은 선비가 있었다. 사간원 정언 안효제다. 어리석은 고종은 크게 화를 내며 진령군을 공격한 안효제를 전라도 섬으로 유배했다.

한말 고종과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나라를 어지럽힌 진령군과 최씨 부녀의 전횡이 찍은 붕어빵처럼 닮아 있다. 그런데 그들을 종교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무당 최순실에 놀아난 무속정국을 한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무속신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자 무속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했다.

사이비 무당 최순실 때문에 순수한 무속인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다며 무속인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최씨에게 무당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서명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한국무신교총연합회의 입장이다. 협회의 주장이 백번 이해된다. 박창렬이나 최씨 부녀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더러운 행각을 어찌 신령한 무속신앙 곁에 세울 수 있겠는가. 그냥 희대의 사기꾼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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