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2월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가 소로리 볍씨 터에 세워 놓은 비석이 세계 최고의 볍씨가 출토된 지역임을 알리는 유일한 증표로 남아 있다. 비석 뒤 볍씨 터 바로 옆으로 창고동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인진연 기자
충북대박물관 발굴단(단장 이융조)은 지난 1994년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오창산단 내 옥산면 남촌리 1113-8 부지에 1997~1998년도와 2001년에 2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 1만 3천년 전의 볍씨 총 59톨을 발견했다.
이후 이 교수는 지난 2001년 10월 필리핀에서 열린 ‘제4회 국제 쌀 유전 심포지엄’에서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 볍씨라는 사실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고, 국제미작연구소(IR|)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학계의 논란을 덜기 위해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천년~1만 5천 년 전의 절대 연대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소로리 볍씨가 1만 3천년~1만 5천 년 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 추운 기후 등을 들어 의문이 제기됐다.
그 고증을 얻기 위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 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이 발아돼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됐다.
당시 볍씨를 분석한 허문회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학수 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 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 충북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라,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의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발굴단은 2002년 3월 11일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토탄층(완전히 탄화되지 않은 흑갈색의 토층)조사 현장에서 확인된 볍씨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발굴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12월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제1회 소로리 국제학술회의가 5일간 개최돼 국내외 저명 학자와 관계자들 모두가 협력해 소로리 볍씨터에 대한 유네스코 본부의 지원과 농촌진흥청·문화관광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협조를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과제라고 밝혀 보존의 전망을 밝게 했었다.
이후 프랑스 파리의 세계 문화유산 관계자들도 이 유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도 지난 2003년 10월 22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는 타이틀로 보도했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해 세계 최고의 볍씨임을 재확인해줬다.
소로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구석기시대 야외유적과 토탄층이 함께 확인된 곳으로 고고학과 고생물학, 제4기 지질학 등 학문연구를 통하여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경로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국내외적인 이슈로 부각되자 보존의 당위성이 한층 높아졌지만 문화재 지정무산 등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 2006년 민선 4기 청원군수로 취임한 김재욱 군수가 보존의사를 밝히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2년여가 흐른 지금 세계 최고의 볍씨를 간직했던 소로리 볍씨 터는 모든 이들의 무관심속에 이곳이 소로리 볍씨 터임을 알리는 비석 3개만 달랑 세워진 채 보존과는 무관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다.
/ 장인수·인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