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소통하는 그림책 읽기

2014.03.05 13:16:32

김형식

행정초등학교 교감·아동문학가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 -중략-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이 시는 윤석중 선생님의 '넉 점 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이다. 시계가 집집이 없던 시절, 아이는 시간을 알아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간다. 시간을 알아가지고 돌아오던 길에 물 먹는 닭 구경하고, 개미 거둥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돌아다니고, 분꽃 따 물고 노는 사이 해는 꼴딱 져버렸다. '아가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웃음이 나는 시이다. 그래도 시간을 잊지 않으려고 "넉 점 반/ 넉 점 반" 끊임없이 종알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의 말은 운율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도 해준다.

이 시를 더 맛깔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책이 있다. 심부름을 간 아이가 이경영의 그림에서 소박하고 앙증맞은 캐릭터로 등장하여 그림책을 읽는 이에게 동심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아가의 시간'이 어떻게 의미를 형상화해나가는지를 볼 수 있는 이 그림책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텍스트가 그림과 조화를 이루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기 좋다.

단발머리 아이의 눈길이 닿는 세상은 흥미진진하고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개미도 잠자리도 분꽃도 모두가 놀잇거리가 되던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성했던 시대를 볼 수 있다. 시에는 없지만 그림에 재치와 익살이 녹아 있어 어른들이 읽으면 교련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할 것이다.

이러한 그림책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얼마나 아이에게 다가가기 좋을까 생각해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전처럼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옛날이야기 해주는 것은 힘들다. 가끔 만났을 때 글자 몇 자 안되고 전체 10여 장으로 되어 있는 책을 들고 아이에게 다가가면 별 거부 반응 없이 다가올 것이다.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이야깃거리가 많다. 가게 안에는 그 당시 아이들이 좋아했던 물건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방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보면 할아버지가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고 있다. 앉은뱅이책상이 있고, 육각성냥갑도 있고, 매일 한 장씩 뜯어내던 달력도 걸려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추억 속 물건들이다. 그림책을 보며 신기해하는 손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시에는 없지만 그림책에는 해가 꼴딱 져 돌아와 "시방 넉 점 반이래"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아이의 집 바로 옆이 가게라는 설정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것이 그림책의 묘미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멀리하는 것은 공감하는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즉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세대 간의 간격 때문이다. 새 학년 선물로 그림책을 골라주고 아이와 함께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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