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근대유산을 보전하자 - 옥천 천주교회

도내 유일 1940년대 건축 성당

2009.08.31 18:45:27

옥천 천주교회는 도내 유일한 1940년대 건축성당으로 해방이후 지방 성당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등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옥천 삼양리에 위치한 '옥천 천주교회'. 옥천 천주교회는 현재 충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40년대의 천주교 성당이다. 옥천 천주교회는 해방이후 지방 성당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등 이후의 성당 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옥천 천주교회는 공주본당에서 분리·창설된 본당으로 한국 천주교회 초기 열 번째 한국인 사제인 홍병철 루가 신부가 옥천본당의 초대 신부로 임명을 받은 1906년 5월 20일이 설립일이다. 옥천 천주교회는 청주교구에서 두 번째로 봉헌된 성당이다.

성당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기와집으로 1945년 무렵에 세워졌다. 지붕은 벽돌 조적식 단층 기와지붕으로 평면은 직사각형의 홀 형식이다. 1991년 10∼11월에 성당 뒷면에 '트랜셉트'(transept·翼廊)와 제단 '앱스'(apse·後陣)를 증축해 직사각형 형식에서 십자형으로 바뀌었다.

옥천 천주교회는 도내 유일한 1940년대 건축성당으로 해방이후 지방 성당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등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옥천천주교회의 역사는 1903년 시작된다. 1903년 공주 본당의 신부인 파스키에(P. Pasquier)에 의해 옥천 공소가 설립되고 1904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옥천이 교통의 요지로 부상하게 되자 옥천 본당 설립이 추진된다. 이에 1906년 5월 옥천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신부로 홍병철 루가 신부가 부임했다.

1909년 20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었지만 이후 옥천 본당은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48년 7월 본당으로 다시 승격되는 과정도 겪는다. 본당은 삼양리로 이전하여 새로운 성당 건물을 신축한다. 이후 1956년 옥천 본당 건물을 100여 평으로 확장하여 증축해 오늘에 이른다.

근대 천주교 성당건축이 그러했듯이 옥천 천주교회도 초기 한옥성당에서 양식성당으로 변천해갔다. 근대기 천주교는 초기 토착화과정에서 낯선 외래종교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없애고, 경제적·시공 기술적인 문제 등에 의해 대부분이 기존 한옥을 개조,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한양절충식 성당 또는 양식성당으로 변천해 가는게 당시 일반적인 순서였다.

현재의 양식성당은 1955년에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 변로이(Petipren Roy. 邊聖行, 미국)신부가 주도하여 건축됐다. 옥천성당에 있던 초기 한옥성당과 그 부속건물 대부분이 이미 소실되었고, 현재는 본당만이 남아 있다.

본당은 건립 후 종탑 상부 첨탑 마감이 함석에서 기와로 변경되고 주 출입문 교체 등 몇 가지 변화를 겪다가 1991년 기존 일자형 건물에서 라틴 십자형으로 크게 증축됐다.

본당 건물은 6.25전쟁 이후 한국 종교건축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2월 28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제7호로 등록됐다.

/ 홍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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