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근대유산을 보전하자 - 괴산 홍명희생가

항일지사 古家로 문화 가치 높아
논란 속 충북민속자료 재지정… 조선후기 양반가옥 특징

2009.10.26 19:16:10


장편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1888∼1968). 홍명희선생의 생가가 괴산 동부리에 자리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작가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홍명희는 이후 월북해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되던 때도 있었다.

홍명희 생가는 1730년께 건축된 것으로 현재의 모습은 1860년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 가옥의 사랑채에서 주민들과 함께 괴산지방의 만세시위를 모의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가옥은 지난 1984년 중요민속자료 146호로 지정되었다가 소유주의 요구로 1990년 문화재의 지정에서 해제됐다. 그러나 이후 홍명희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괴산군청에서 매입하여 복원한 것이다.

2002년 11월 충청북도와 괴산군이 매입해 안채·사랑채·광채 등 3동의 건물을 보수했고 앞으로도 대문채·중문채 등 멸실된 건물을 복원할 예정이다.

홍명희 생가는 지난 2002년 12월 '일완 홍범식 고택'이란 명칭으로 충북도민속자료 14호로 재지정됐다.

현재 이 가옥은 많이 고쳐진 상태다. 집의 사랑채와 안채의 부재 중 남아 있는 것은 10%도 되지 않는다. 지정 당시에는 안채와 사랑채, 사랑채에 부속된 아랫사랑채와 사랑채로 통하는 문 그리고 뒤뜰에 있었던 광채만이 있었다. 대문간채와 담장 등은 새로 지었으며 안채의 구성도 198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당시의 평면과 비교해볼 때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홍명희 생가는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안채는 정면 5칸·측면 6칸 규모로 전체적으로 'ㄷ'자형이며, '一'자형 광채를 한 단 낮게 맞물리게 하여 광채의 지붕이 안채의 아래로 이어져 있다. 평면상으로는 몸채에 전퇴를 달고 나머지는 맞배집으로 만들었는데 광채를 포함한 형태는 'ㅁ'자형이다.

안채 좌측에 배치된 사랑채는 2고주 5량가 구조로, 장여를 받친 납도리집이며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됐다.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를 이루게 하면서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청 문화재계 김희수담당은 "홍명희 생가는 1730년께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반가옥으로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지녀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항일지사의 고가(古家)이자 3·1운동과 관련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 홍순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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