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장, 우리는 그렇게 이웃이 된다

장소와 사물

2025.04.29 14:53:17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공학박사

'한칸 성안점'이 오픈했다는 소식이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왔다. 위치를 검색하니 '요코센' 맞은편이었다. 요코센은 내가 종종 들르는 선술집이다. 그사이 '스티즈커피 북문로점'도 생겼다. 스티즈도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법 알려진 브랜드다. 중앙시장에 입소문 난 가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궁금했다. 지인과 모임 장소를 부러 중앙시장으로 정했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활기와 달뜬 에너지가 넘실대고 있었다. 변할 것 같지 않던 중앙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

# 취향과 취향이 만나는 곳

4년 전, 중앙시장 골목에 요코센이 문을 열었다. 유동 인구도 없고, 밤이면 더 을씨년스러운 시장통에 술집이라니. 요코센 김승균 대표는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다고 말한다. "청주에 살았지만, 중앙시장에는 그때 처음 왔어요. 소소하게 다찌 테이블 놓고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대료도 저렴했고요. 코로나 시절이어서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어요. 휑했지만, 그런 조용한 느낌이 좋았어요. 불안하기보다는 취향이었던 거죠."

정작 요코센을 걱정한 건 주변 상인들이다. "채소가게 사장님이 이런데 왜 왔냐, 안쓰러워하셨어요. 혼자 뚝딱뚝딱 공사하고 있으면 밥 먹었냐 묻고, 김치찌개 끓였는데 같이 먹자 부르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취향이 취향을 부르는 것일까. 한칸 한준희 대표가 말을 잇는다. "사창동 한칸도 터무니없는 작은 골목 안에 있어요. 우연하게 이곳을 보고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시장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오래 자리 잡아 온 요코센도 있었고요."

오래된 것과 힙(hip)한 것이 그렇게 섞이고 있었다. 스티즈커피 상점에는 오래된 '동원고추' 간판이 붙어있다. 유리창 한 켠에 마스킹 테이프로 상호가 적힌 A4 용지를 붙인 게 전부다. 오후 3시면 문을 닫지만, 조명을 켜둔다. 밤에도 빛과 힙을 더한다. 김승균 대표와 한준희 대표가 동시에 외친다. "9시쯤 출근해서 스티즈커피로 하루를 시작해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웃이 되었다.
# 그 골목은 유쾌함과 친절함과 호의로 가득하다

요코센과 한칸은 채소와 과일과 고기를 중앙시장에서 해결한다. 다양한 세대가 방문하는 문화를 지향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정작 '애들이 싫어한다'며 '이런데 못온다'고 하신다. 대신 1년에 두 번 동네 막걸리 잔치를 연다. 중앙시장을 살려야 한다거나 교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닌, 도와주시고 기특하게 봐주시는 게 감사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재화와 마음이 넘나든다. 도시에서 이미 낯설어진 공동체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꿈이 무엇이냐'는 단순한 질문에 김승균 대표가 감동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오래 장사해 오신 분들에게는 일이 일이 아니에요. 인생이에요. 이분들을 보면서 반성해요. 나태했구나. 일로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이분들의 삶이 좋아요. 존경의 마음이 일어요. 저도 계속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일하고 싶어요." 바라는 거 없이 행복한 경지에 어떻게 이르는가. 그것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일까.

한칸의 야외 테이블도 삼십 년 된 것처럼 그곳에 놓여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채소가게 사장님이 한칸 유리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궁금하셨나 보다. 한칸 셰프님은 그사이 딸기를 접시에 담아 요코센의 야외 테이블에 슬그머니 놓고 왔다. 아름답고 고요한 소란. 유쾌함과 정중함이 있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그 표정들을 낱낱이 살폈다. 오래된 미래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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