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미술관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도시라는 캔버스 위에, 낡은 건물과 전봇대와 어지럽게 붙어있는 전깃줄이 설치 예술품으로 서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은 미디어 아트의 움직이는 오브제이다. 예술 작품을 보듯이 그것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 박해빈 작가, 대성아파트를 만나다
대성동 대성아파트 가동 205호는 '아파트 빈공간'이라는 전시 공간이고, 박해빈 작가는 기획자다. 2024년 여름 우연히 대성동 산책에 나선 그는 대성아파트에 올라갔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텃밭을 가꾸고 있었어요. 마치 '응답하라 1988'를 보는 듯했어요. 여태껏 보지 못한 생활감이 느껴졌어요." 그는 마침 비어 있던 205호에 들어갔다. "향교부터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기분이었어요."
2014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처음 청주에 온 박해빈 작가는 이후 청주에 정착했다. 가경동 작업실 유리창 전면에 예술 작품을 공개하여 소통하고자 했던 '빈공간 윈도우 프로젝트'는 이제 대성동 '아파트 빈공간'으로 터를 옮겼다. '창' 너머 '아파트 빈공간'을 점유한, 더 크게 펼쳐질 그의 세계가 궁금하다.
"공사하는 동안 드릴을 많이 썼어요.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화를 내셨어요. 집 무너진다고. 40년 된 아파트니까요. 안 되겠다 싶어 떡을 돌렸어요. '요즘 사람들 이런 거 안 하는데' 하시더니, 다음날부터는 반갑게 인사도 해주시고, 먼저 말도 건네주세요. 정이 남아있는 동네에요. 앞 동은 3층인데, 뒷동은 2층이에요. 아파트 자체가 하나의 전시 공간 같아요. 멀리서 보면 창이 깨진 곳도 있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아파트 빈공간'을 통해 이곳이 덜 무섭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미스테리 하지만 호기심이 가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전시 공간이라고는 하나, 출입구에 작은 간판 하나 없다. 2층 창문에 전시회 포스터 한 장 붙여 놓은 것이 전부다. 눈 나쁜 사람은 볼 수 없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태도에서, 그가 대성아파트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짐작할 뿐이다.
# 원도심에서 펼쳐질 두 번째 초대장
그녀는 자꾸만 사람들을 초대한다. 순전히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서울에서, 제주에서 작가들이 대성동을 찾았다. 충북문화관, 숲속 갤러리, 당산 생각의 벙커, 올리브, 향유 122에서부터 명지라사의 오래된 간판과 쇼룸 안의 고풍스런 피아노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말한다. "전시 공간 밖으로 자꾸만 생각이 뻗어 나가요."
아파트 빈공간 개관전은 4월 30일까지다. 그는 지금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이머시브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이다. 대성아파트 가동 205호로의 초대장을 받으면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원도심을 배경으로 공연을 만든다. 관객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모든 과정은 영상에 담긴다. 도보 여행 루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관광 상품을 만들어야 할까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원도심을 알리고 싶어요. 청주 너무 좋다고, 재밌다고, 이 동네로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게 제 역할인 거 같아요."
도시를 미술관처럼 감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 행위가 된다. 게다가 우리에겐 박해빈이라는 근사한 안내자가 있다. 직접 걸으며 몸으로 체험하는 동안 우리는 평소와는 달리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발견하려 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마음, 다정한 마음. 그 마음들이 도시를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을 열렬하게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