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Nudge)'를 정책 수단으로 인식한다면

2024.12.15 15:53:17

김장회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이사장, 전 충북도 행정부지사

우리나라에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갈라파고스 규제는 주변과 단절되어 독특한 생태계를 구성한 '갈라파고스섬'처럼 특정 지역이나 문화권에만 존재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퇴행적인 규제를 의미한다. 이렇게 규제가 많아지는 이유는 사회경제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조급하게 강력한 규제가 신설된 후, 상황변화와 상관없이 규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규제는 정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규제는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고 경제활동을 저해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규제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체감도는 낮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2009년경부터 최근까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과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는 저서 「넛지(Nudge)」, 「항행력(On Freedom)」등에서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 기업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넛지'를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론처럼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개입'을 넛지(Nudge)라고 한다. 넛지를 통하여 정보 부족이나 행동의 편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도와 줄 수 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접근이 쉬운 위치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손이 가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의 식생활을 개선하거나 고속도로의 진출입이 편리하도록 도로 면에 유도선을 그려 운전자가 편리하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예이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자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만 따르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퇴직연금 자동 가입제도, 담뱃갑의 시각적 경고, 식품 영양소 표기 등은 모두 넛지의 한 사례이다.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는 목적지에 효율적으로 도달하려고 할 때 그러한 능력이 제약받는다면 선택의 자유가 위축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개입이 주어진다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된다.

보통 정부의 정책은 명령과 금지 또는 경제적 보상의 형태를 띤다. 강압의 형태를 띠는 명령과 금지가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는 반면, 넛지는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다. 보상의 경우 왜곡이 발생할 수 있으나, 넛지는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면서도 경제적 보상을 하지 않는다. 넛지가 동일한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특히 공무원들에게 필요하며, 국민에게는 선택의 실패에 대한 안전벨트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우려와 시장 기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금이야말로 정부나 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경제가 활성화되도록 선택의 환경을 보다 더 적극 고려해야 할 때이다. 이를 통하여 국민이 효과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항행력(Navigability)'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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