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하면서도 불쌍한 노벨상 수상자

2024.12.12 14:32:54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올해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시상이 지난 10일 스웨덴에서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강 작가는 "세상은 이토록 폭력적이며 고통스러운데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를 글쓰기 동력으로 삼았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번 노벨상은 문학상이 우리에게 자긍심 넘치는 감동을 주었고 과학상과 경제학상에서는 충격적인 수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AI라는 새로운 첨단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물리학과 화학상의 수상자와 코로나를 계기로 진전된 질병치료의 신영역인 RNA연구자에 대한 생리의학상 수상이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와 북한을 대표적 사례로 국가의 차이가 '포용적 제도'냐 '착취적 제도'냐를 가지고 연구한 경제학상 수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남북으로 나뉜 지 80년이 되어가는 지금, 당시 우위에 있던 북한에 비해 수십 배의 국력차이를 낳은 것은 민주적 포용제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에 공헌한 인물들을 선정하여 시상해 온 노벨상 역사에서 공헌으로는 첫 손이면서도 가장 부끄러운 일도 첫 손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프리츠 하버라는 독일의 화학자입니다. 하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스스로는 독일인으로 자처했습니다.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도 여러 대학에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당시 농업은 유기물만을 비료로 하여 생산에 한계를 가져와 늘어나는 인구에 대한 식량부족이라는 위기인식이 오늘날 환경공해만큼 컸었습니다. 공기 중 80%에 달하는 질소이지만 화학적 결합력이 강해 이를 분리해 내지 못해서 남미 구아노라는 새똥으로 대체하였던 실정이었습니다. 맬더스의 인구론(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 위기가 온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였습니다. 오죽하면 남미의 칠레, 페루, 볼리비아가 구아노 확보를 위한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해 내기 위하여 2만 번 이상의 실험 끝에 오스뮴이라는 촉매제를 이용, 결국 성공해 냈고 질소비료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로로 하버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맬더스 인구론이 나온 시점의 세계 인구가 15억 명이었는데 21세기 들어 세계 인구는 70억 명이 넘어서고 있으면서도 식량위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개략적으로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덕을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를 '공기로 빵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버는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조국인 독일을 위하여 군에 들어가 화학전을 이끌었습니다. 자기 조국인 독일의 승리를 위하여 독가스를 만들어 실전에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화학전의 아버지', '독가스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당시 드문 박사학위를 받은 지식인으로 이를 비관하여 자살했지만 하버는 계속 화학전을 지휘했습니다. 결국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하버는 일시적으로 도망다니다 다시 돌아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대가 자행되자 도피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신하지 못한 그의 친족들은 그가 만든 치클론B라는 독가스에 의해 수용소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버 역시 도피 중이던 스위스 바젤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세기말적인 맬더스 인구론을 수정시킬 정도로 수십억 인류를 기아에서 구제시킨 공헌을 한 위대한 과학자 하버는 유대인보다는 조국 독일인이라는 자긍심으로 전쟁터에서 독가스를 만들었지만 나치에 의해 학대를 받아 홀대속에 죽음을 맞이한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라도 모든 성과가 긍정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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