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와 선비정신

2024.11.21 14:58:14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중략-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하략-

-조지훈, 「승무」

「승무」는 북채 두 개로 법고를 치면서 죽어 떠난 사람 넋을 달래는 민속춤으로, 공간은 춤추는 공간, 넋두리 공간으로 나뉜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넋두리 공간에 들어서야 한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과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과 함께 참회하고 있다.

달빛 받기 위해 "접어 뻗는 손", 그 손 위에 떨어져 내리는 달빛 고운 밤이 되었다. 적막한 어둠이지만 깊어 가는 밤 속으로 달빛이 곱게 내리고 있다. 달빛 고운 밤,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추는 춤은 괴로움과 낙담을 떨쳐 버리기 위한 몸짓이며, 잘못 들어선 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헤아릴 수 없는 간절히 몸짓이다.

우리네 정신세계는 이와 같은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다. 선비란, 선비(士)이면서 공직에 있는 사람(大夫)을 말한다. 이러한 사대부가 되는 방법은 오늘날 각종 국가고시와 같은 과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호연지기는 선비정신으로 이어진다. 하늘을 흘러가는 기운을 뜻하는 호연지기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묻는다.

"선생님 '호연지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맹자 왈 "그것은 기氣를 이루고 있으며, 가슴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다. 곧게 키우고 해를 끼치게 함이 없으면 곧 그 기운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또 그것은 인의·도덕과 짝지어 길러지게 되는 것인데, 만약 이렇지 못하면 시들어 버리게 된다. 이 호연지기는 의가 쌓여 스스로 내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지, 어쩌다가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하나 했다고 해서 억지로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호연지기는 인격이 추구하는 최고 기상을 말하며, 욕심을 버리고, 그릇된 마음을 품거나, 그릇된 행동을 하거나, 힘으로 협박함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기본 덕목은 의이다. 의는 언제나 옳은 일을 추구하는 집의에 의해 형성되는 도덕적 기개를 말한다. 이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로 진취적 기상이 바탕에 있는 마음이다.

이런 사람은 욕심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지닌 사람으로 대장부인 것이다. 소인이란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와 유혹에 끌려 다니면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사단을 무시하고 방치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도량이 좁고 품성이 거친 사람을 말한다.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이 없고, 많은 재산으로도 마음을 흐리게 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하지만 절개와 지조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힘으로도 뜻을 꺾지 못하니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면 비록 상대가 천만 명일지라도 내 소신대로 떳떳이 나아가는 것이 호연지기이다.

이 가르침은 공명정대한 도덕적 용기이다. 이러한 호연지기를 보고 싶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달빛 고운 밤,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추는 춤은 괴로움을 떨쳐 버리려는 몸짓이며,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한 헤아릴 수 없는 영혼이 간절히 몸짓이라 했다. 간절히 몸짓을 가진 호연지기 있는 진정한 선비를 보고 싶음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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