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충남지역 시비 탐방'을 다녀왔다. 가이드로서 동행하였다. <머들령>으로 널리 알려진, 정훈 시인의 모교이기도 한 대전의 삼성초등학교에 시인 20여 명이 집결했다. 충남 부여에 있는 신동엽의 생가와 신동엽문학관, 강경상고와 논산시민운동장에 있는 박용래, 김관식 시비, 논산 연무읍에 있는 김관식의 생가 등을 탐방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먼저 들른 곳은 신동엽의 생가와 신동엽문학관이다. 여러 번 온 곳이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신동엽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서 안 보였던 것들이 조금씩 더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신동엽문학관을 둘러보기 전, 신동엽 생가 옆에서 대전 시인들에게 신동엽 시인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시인이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많이 활동하고 그곳에서 작고하였지만, 그가 고향인 충남 부여를 얼마나 사랑했고, 충청도 문인들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를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소개한 이는 지난봄에 작고한, 대전문학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고문인회고전 - 백강 조남익 편'의 주인공인 조남익 시인이다. 그의 중형(仲兄)인 조남중과 전주사범학교 동기인 신동엽은 조남익이 서울에서 시집 『고행(苦行)』을 자비출판하려 하자 등단 절차를 거친 뒤 시집을 낼 것을 권유하게 된다. 신동엽 시인의 도움으로 신석초 시인을 만나게 되고, 습작기간을 거쳐 1965년에 『현대문학』으로 신석초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69년에 신동엽 시인이 지병으로 짧은 생으로 마감하게 된다. 이후 조남익 시인은 그의 문학을 추모하고, 그의 시비가 건립되는 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신동엽 시인과 인연이 깊은 또 한 명의 시인은 홍희표이다. 1967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서 신동엽 시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야간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신동엽 시인은 홍희표 시인을 불러 신문사와 잡지사 등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신문사와 잡지사에 건네주기도 했다. 감사의 뜻으로 점심이나 차를 대접하려 하면 신동엽은 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며 자신이 돈을 냈다고 한다. 이듬해에 첫 시집 『어군(魚群)의 지름길』 발문을 부탁했을 때 그는 청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어군의 지름길』에 수록된, 신동엽 시인의 발문은 당시 시인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발문은 『신동엽 전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인은 충남 부여에서 교편생활을 한 이진석 시인이다. 그는 1959년에 충남 부여에서 발간된 『부소』 창간호의 동인회원 명단에 신동엽 시인과 나란히 올려 있다. 그와 친분이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첫 시집 『강마을』에 신동엽 시인이 쓴 '서문'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가 서문을 부탁했을 때 신동엽 시인이 그 청을 거절하지 않아 가능한 것이었다. 이 서문도 『신동엽 전집』에 실려 있지 않다. 이후 『신동엽 전집』 개정판을 발행할 때 신동엽 시인이 쓴, 홍희표의 첫 시집 『어군의 지름길』 발문과 이진석의 첫 시집 『강마을』 서문이 꼭 수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통해 신동엽 시인의 인간미와 충청도 후배들에 대한 지극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 신동엽 시인이 후배들의 시를 통해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백제 정신을 발견하려 했다는 점도 아울러 소개했다.
신동엽 시인의 일화를 들은 일행들은 신동엽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동엽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시인들은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된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동학과 관련된 내용도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곳에서 나와 강경에 위치한, 김관식과 박용래 시인의 모교인 강경상고(구 강경상업학교)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정문에서 가까운 1931년에 지어졌다는 교장 사택을 둘러보았다. 붉은 벽돌을 사용한 조적조 1층 건물로, 등록문화재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귀한 건물을 본 뒤 두 시인의 시비를 보러 갔다. 김관식 시비와 박용래 시비가 10미터 정도 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비에 김관식의 시 <이 가을에>와 박용래의 시 <점묘(點描)>가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 김관식 시비만 있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박용래 시비가 세워져 있어 보기가 좋았다. 이어 연무읍 소룡리에 있는 김관식의 묘소와 논산시민운동장에 건립된 김관식과 박용래의 시비를 둘러보았다.
대전 시인들과 동행한, '충남지역 시비탐방'은 여러모로 뜻 깊었다. 시인들이 걸어간 길을 천천히 따라가며, 그 시인이 살았던 삶의 풍경과 시인의 체취, 그리고 시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들의 흔적을 탐방하는 일은 자신을 돌아보고, '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