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식생활 리포트 - ⑥제주편

생산자·소비자 연대로 먹거리 위기 극복
아열대기후로 전국·대도시 월동채소 생산지 전락
안덕농협·조천농협 등 로컬푸드직매장 활성화

한살림제주 담을매장 지역순환형 로컬푸드 집중
공동체텃밭 활용 지속가능한 농업·돌봄 가치 실천
지역먹거리지수 D→ B등급 상향 등 성과 나타나

2024.06.09 17:24:38

한살림 제주담을매장에 생산자들의 얼굴사진이 걸려 있다.

ⓒ안혜주기자
[충북일보] 한반도 최남단, 화산섬 제주도는 지구온난화로 기후 위기는 물론 먹거리 위기의 최전선이 됐다.

기후 위기와 함께 산업화를 겪으며 대도시 위주로 농산물이 재배되고 유통되다 보니 제주에 사는 지역민의 식생활보다 경제 논리로 농업이 기형적으로 재편되는 위기를 맞게 됐다.

국가통계포털 분석 결과 전국 9개도(道) 가운데 농가 부채가 가장 많은 곳은 제주였다.

2023년 기준 제주 지역 농가 1곳당 부채는 9천447만6천 원으로 전국 평균 4천158만2천 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농업경영비는 4천813만 원으로 전국 평균 2천677만9천 원과 비교해 1.8배 많았다.

농가 소득은 6천53만1천 원으로 9개도 가운데 가장 많고 전국 평균 5천82만8천 원보다 19%(970만3천 원) 더 많았으나 농외소득이 2천627만1천 원으로 9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천혜의 자연, 원시 자연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제주의 농업과 농촌은 산업화를 겪으며 동절기 전국에 월동채소를 공급하는 산지로 전락했다.

조천농협 로컬푸드직매장 전경.

ⓒ안혜주기자
아열대기후로 다른 지역과 비교해 겨울 작물 재배가 용이하다 보니 대도시와 육지에서 채소가 나지 않는 동절기 감자, 당근, 양배추, 양파 등을 공급하는 월동채소 생산지로서의 기능만 발달하게 된 것이다.

4계절 중 3계절은 밭이 비어있는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농산물이 출하되지 않는 기간은 육지에서 받아 먹거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기형적인 농업 구조에 대응하고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겪으며 제주에서는 로컬푸드, 지역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이들이 늘게 됐고 10여 전부터 로컬푸드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체계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는 안덕농협이 출하회 결성, 교육 등 준비 과정을 거쳐 2015년 7월 제주에서 처음으로 로컬푸드직매장을 개장했으며 이후 제주시농협, 조천농협, 중문농협, 성산일출봉농협이 로컬푸드직매장을 운영에 들어갔다.

조천농협은 2019년 12월 독립 점포 형태로 조천농협주유소 인근에 로컬푸드직매장(조천읍 신촌리)을 개점·운영했으며 농가와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현재 확장 이전을 준비 중이다.

조천농협 로컬푸드직매장은 오는 20일 조천농협 농산물유통센터(조천리) 인근에서 영업을 시작한다.

제주에서 친환경·로컬푸드 활성화로 저탄소 식생활 활동이 두드러진 곳은 꼽는다면 제주시 노형동 '제주담을 센터'가 있다.

제주 조천농협 로컬푸드직매장에 제주지역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성지연기자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한살림제주)와 한살림제주의 자회사인 밥상살림주식회사, 한살림생산자제주도연합회의 공동 출자로 조성된 제주담을 센터는 소농과 소가공 생산자,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연대해 지역 농산물의 지역 내 소비를 늘리는 로컬푸드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기획됐다.

한살림제주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출자해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과 소비시장을 만들고 기후변화, 농업과 식량위기, 에너지 고갈과 핵위험 등 문명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생활문화운동을 함께해 나가는 비영리단체로 2008년 창립했다.

한살림제주는 창립 첫해 노형매장(제주시 노형동)을 시작으로 이도매장(제주시 이도이동·2013년), 동홍매장(서귀포시 동홍동·2014년)을 차례로 개장했다.

한살림제주는 창립 10주년이던 2018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10년을 설계, 새로운 비전을 내놓게 되는데 그 과정을 거쳐 2020년 5월 탄생한 곳이 바로 '제주 담을센터'다.

한살림제주의 핵심 가치인 '지역순환형 로컬푸드' 사업을 실천하기 위해 조성된 제주 담을센터는 한살림제주 담을매장과 함께 로컬푸드 매장, 물류센터, 교육센터가 함께 들어섰고 담을매장 건물 후면에는 공동체텃밭인 제주담을밭이 조성됐다.

지역순환형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한살림제주의 제주담을센터 전경.

ⓒ안혜주기자
담을매장은 기존 매장과 달리 제주지역 소농들이 생산한 신선한 로컬푸드를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곳에서는 1천200~1천300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200여 품목은 로컬푸드다.

제주 지역농민들이 직접 수확한 농산물과 제조한 가공식품들로 로컬푸드는 농가가 직접 진열하거나 밥상살림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난다.

개장 4년 차였던 지난해부터는 제주지역 로컬푸드직매장과의 시너지도 나타나고 있다.

로컬푸드직매장이 여러군데 생기면서 판로가 확대되고 매출도 오르며 직매장 입점을 꺼렸던 농가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강순원 한살림제주 전무이사는 "담을매장 내 로컬푸드 매장만으로는 소비역량에 한계가 있어 농가에 어려움이 있다"며 "조천농협 등 제주지역 농협들의 로컬푸드직매장이 활성화되면서 부담 없이 소비되고 매출도 오르다보니 농가들도 재미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파머컬처' 개념을 도입해 조성한 한살림 제주담을센터의 공동체텃밭

ⓒ안혜주기자
담을매장은 탄소 배출을 저감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 우유갑과 멸균팩 수거함을 비치했고 제주산 허브로 만든 친환경세제를 소비자들이 직접 가져온 용기에 담아가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지만 미처 가져오지 못한 소비자들을 위해 조합원들이 깨끗한 종이봉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치해 두기도 했다.

매장 후면에 조성된 공동체텃밭은 '숨 쉬는 제주식탁, 상생하는 허브공간'이라는 담을센터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심지 자투리땅에 불과했던 이곳은 담을센터가 문을 열며 농업의 가치는 물론 탄소중립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공동체 텃밭(1천500㎡)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구 쪽 원형 텃밭은 호주의 '파머컬처(permaculture)'가 모티브가 됐다.

파머컬처는 영구적(permanent)이라는 말과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로 호주의 빌 몰리슨과 데이비즈 홈그랜이 만든 개념이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관계를 모방해 지역에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높은 생산성보다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생산적인 노동을 통해 관리된다. 텃밭관리는 고령인 마을 주민들이 맡는다.

안쪽 구획된 텃밭은 어린이집 원생, 장애인복지관 이용자들이 친환경 재배농법으로 관리한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닐멀칭은 이곳에 없다. 잡초도 자연의 일부,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소중함과 먹거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푯말을 직접 그려 책임감도 키운다.

강순원 한살림제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전무이사가 담을매장 내 로컬푸드 코너에서 매장 운영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혜주기자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에는 농민장터인 자연그대로장이 열린다.

공동 농부장인 담을장 운영이 코로나19로 중단된 후 자연그대로장만 열리고 있는데 현재는 15개 내외의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 중 5개 농가는 담을매장 내 로컬푸드직매장에도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해 한살림제주는 로컬푸드생산자 발굴·조직, 후계농 육성방안, 친환경 농지관리, 공동체 텃밭 프로그램 기획·진행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강순원 전무는 "지난 4년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제 틀을 잡아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속 가능한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해 한살림제주는 로컬푸드생산자 발굴·조직, 후계농 육성방안, 친환경 농지관리, 공동체 텃밭 프로그램 기획·진행 등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생산자와 소비자, 농협, 한살림제주 등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이 더해지며 2020년 C등급, 2021년 D등급에 그쳤던 제주의 지역먹거리지수는 2022년과 2023년 B등급으로 상향됐다.

지역먹거리지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해마다 지속 가능한 먹거리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 자치단체를 평가해 발표하고 있으며 평가 점수에 따라 6등급(S-A-B-C-D-E)이 부여된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민이 더 많이 소비할수록 지역먹거리지수도 높아진다.

강 전무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과정,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재인식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먹거리를 얼마나 균형 있게 이용하고 있는지 보면 취약계층이 대다수일 수 있다. 최소한 먹거리만큼은 공평하게 향유할 권리, 먹거리 기본권에 대한 고민을 정부와 지자체가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농업과 로컬푸드를 통해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혜주·성지연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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