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정약용)이 마음으로 쓴 글

2022.09.26 14:53:59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다산(茶山)은 근기(近畿)지방의 남인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연간에 문신으로 벼슬을 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한 인물이다. 유배기간에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다.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해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했다. 다산의 글 중에 노년유정(老年有情)에 관해 마음으로 쓴 글이 좋아 옮겨 본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으니, 그댄 자신을 꽃으로 보시게. 털려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니 누군가의 눈에 들긴 힘들어도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 이더이다. 귀가 얇은 자는 그 입도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도 바위처럼 무겁네.

사려 깊은 그대여! 남의 말을 할 땐, 자신의 말처럼 조심하여 해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너그러 움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은 정은 사람을 감동케 하나니, 마음이 아름다운 그대여! 그대의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 지리라.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리라.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이고,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정신이 돌아 버릴 테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리라."

구구절절이 지당한 문구가 노인들의 마음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좋은 글이다.

고령화시대에 노인인구가 증가하여 노인복지에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게이트 볼 장과 그라운드 골프, 파크 골프장을 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만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라는 증표다. 그 뿐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경로당을 만들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운동시설을 이용하며 체력도 단련할 수 있고 정담을 나누며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선시대 실학자의 글이지만 오늘날 노인들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명언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자라는 세대들에게 경로사상을 기대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변했음을 실감한다. 노인들도 유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있었건만 자기들은 늙지 않고 마냥 젊음을 유지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우리의 전통 효 문화는 서구의 개인주의 사상이 확산되어 쇠퇴하고 있다.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효사상이요 공경해야 하는 사람의 도리인데 부모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 치부하며 젊음만 즐기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노인들 중에는 자기기준으로 젊은 세대를 대하면서 간섭을 하거나 훈육하려고 들면 노인의 품위만 잃고 존경을 받을 수 없음을 감지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베푸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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