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의 농사체험

2021.07.26 17:38:51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인천과 수원에 사는 손자 손녀 네 명이 왔을 때 마침 밭에 여러 가지 모종을 한창 심는 시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기심이 넘쳐나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시장에 가서 모종을 사서 밭에 심어보자고 했다. 네 명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농사체험을 시키는 것이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놓고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의기투합했다. 도시의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자연환경과 격리 된 삭막함 속에서 자라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수확이라고 생각해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태워 각종 모종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 인도에까지 내놓은 포토에 잘 키운 모종이 즐비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자기가 키우고 싶은 모종을 3~5개씩 골랐다. 서로 중복이 되지 않게 고르라고 했다. 가게 주인에게 각자 비닐봉지에 담아주라고 하였다. 1학년 명균이는 방울토마토와 참외를, 4학년 형인 태균이는 딸기와 브로콜리를 골랐고, 4학년 여자아이인 선우는 수박을 골랐다. 동생들에게 양보한 6학년 형인 동우는 마땅히 고를게 없어서'비트'를 고르며 시무룩해 있었다. 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6학년 동우는 처음 들어보는 비트 모를 고른 것이 아쉬운 지 "애들아 ! 우리 나중에 먹을 때는 같이 나눠먹자!"하며 참외, 수박, 방울토마토를 못 고른 섭섭함이 묻어남을 보고 나 혼자 웃고 말았다. 이미 밭에는 고추, 오이, 토마토, 가지, 상추, 부추, 쌈 채, 고구마 등을 심어놓은 뒤였다. 상기 된 얼굴표정에는 새로운 농사체험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모종 심는 방법을 시범을 보였다. 아이들은 모종삽을 들고 비닐을 씌운 밭두둑에 정성들여 모종을 심었다. 간격을 맞춰 모종삽으로 파놓은 곳에 싹을 놓고 물을 준 다음 물이 스며든 다음에 흙으로 덮고 고사리 같은 양손으로 꼭꼭 눌러주는 모습은 앙증맞기까지 했다. 각자 자기 것을 심는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가족 밴드에 올려서 아이들 엄마 아빠도 보여주려고 말이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자라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세요?"하며 너무 궁금한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모종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고 신기해했다. 6학년 동우는 방울토마토, 딸기, 비트를 보고 "말도 안 돼?"라는 댓글을 달았다. 가까이 살면 밭에 자주 가보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식물 모습을 보는 아쉬움이 컸다. 거의 한달 만에 와보고는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농사체험은 잘 한 것 같았다. 참외와 수박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맺더니 커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새로운 농사체험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참외와 수박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유월의 햇볕을 받고 방울토마토도 주렁주렁, 참외·수박도 주먹만 해 지더니 7월 뙤약볕에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여름방학으로 외가에 와있는 동우와 선우는 참외와 수박을 먹어보더니 시장에서 사먹는 맛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맛있게 잘 먹었다. 내가 먹어봐도 자연의 순수한 맛이 나고 아삭한 맛이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키운 옥수수도 쪄먹으며 주말에 계곡으로 피서를 가서 먹는 간식으로 너무 좋았다. 딸, 사위, 아들, 며느리도 먹어보더니 농약을 치지 않은 노지재배의 맛이라며 하우스재배와는 다르다며 좋아했다. 이제 7월말에 모두 모인다고 하니 달덩이 같은 수박과 노란 오이는 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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