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복 군수의 아름다운 퇴장

2022.04.04 15:52:53

[충북일보] 물러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새롭다.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이 특별하다. 새로운 정치 지평이 기대된다.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 떠날 때 정확히 알고 가야
 
박세복 영동군수가 3선 독주 예상을 깼다. 6·1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두 번만 하겠다. 세 번은 안 된다"는 군민과 약속을 지켰다. 고독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공복(公僕)의 자세를 환영한다. 선출직 공무원의 언행일치를 톺아본다. 식언(食言)과 가언(假言), 허언(虛言)과 공언(空言)을 헤아려 본다.

박 군수의 불출마 선언은 잔잔한 울림이다. 결연한 초심의 유지이자 실천이다. 박 군수는 처음 군수가 됐을 때 약속했다. "세 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재선에 성공했을 때는 "두 번만 군수를 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3선 고지에선 스스로 한 말을 지켰다. 정치 상황으로만 보면 꽃길을 마다한 셈이다.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무난한 당선이 예상됐던 터라 더 그랬다. 초선 당시 박 군수는 3선을 노리는 상대 후보를 공격했다. 3선의 부당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3선 불가 약속도 지켰다. 양보의 가치를 알렸다. 몰염치와 몰양심의 중앙정치에 날린 일침이다.

주변의 3선 권유는 집요했다. 그동안 벌여놓은 사업들을 매듭지으라는 강요도 많았다. 박 군수는 솔직히 더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소신과 약속 사이에서 번뇌했다. 고통의 긴 시간을 보냈다. 결국 신의(信義)를 선택했다. 후진에게 기회를 양보키로 했다. 건전한 선례를 만들고 싶어졌다. 귀거래사(歸去來辭) 결정은 그랬다. 결론은 담백하다. 지역 유권자들은 박 군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퇴장을 환영하고 있다. 박 군수는 8년간 스캔들 하나 일으키지 않았다.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다. 군민들이 퇴임을 아쉬워하는 지도자로 남았다. 성숙한 정치문화를 새롭게 만들었다. 낯설지만 부러운 사람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정도면 아름다운 퇴장이다. 화려한 등장보다 더 값지다. 2006년 1월 4일 이원종 충북지사도 충북지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3선을 포기했다. 정가는 술렁였다. 각 당의 이해득실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물러날 때를 아는 정치인에 대한 충격이 더 신선했다.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을 적어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버릴 때, 물러날 때, 내려놓을 때가 중요하다. 이걸 아는 지도층이 두터운 사회일수록 건강하다.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묵묵히 내려오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래서 늘 환영받는다.

멋지게 떠나는 박 군수에게 박수를 보내자. 얼마나 더 훌륭한 가치를 보여줄지 모른다. 인간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의지로 해결하려 들지도 않는다. 멋지게 떠나는 걸 바라는 게 욕심에 그칠 때도 많다. 그런 점에서 박 군수의 용단(勇斷)은 아름답다. 정치생명의 연장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기에 더 멋지다. 퇴장이 아름다운 사람의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기대되는 법이다. 겉모습만으론 사람의 가치를 다 안다 할 수 없다. 거친 길로 언덕을 넘어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
 
***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아야
 
권불팔년(權不八年)이다. 박 군수가 곧 격무의 시간과 작별한다. 떠나도 영원히 영동군수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따뜻하게 환송해야 한다. 달이 진다고 하늘을 떠나는 게 아니다. 그가 늘 월락불이천(月落不離天)을 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동을 위한 낮달로 살도록 해야 한다.

동백처럼 한 번에 훅 가는 꽃이 있다. 산수유처럼 배경으로 존재하는 꽃도 있다. 목련처럼 지고 난 모습이 추한 꽃도 있다. 하지만 모두 한 생애 한껏 자신을 과시했던 꽃들이다. 겉모습만으로 가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삶은 한 편의 무대와 같다. 등장보다 퇴장이 중요하다. 훨씬 더 큰 여운이 남는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나도 못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건 모순이다. 박 군수는 그 어려운 일을 했다. 그러기에 박수를 보내도 된다. 박수칠 때 떠나는 이에게 더 큰 박수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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