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의 운동회

2021.10.06 15:32:24

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운동회는 학교에서 가장 힘든 행사 중에 하나이다. 늦더위가 기성을 부리던 가을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 힘들게 운동회를 준비하던 기억은 생각만 해도 지친다. 요즘 운동회는 대부분 이벤트 회사에 맡겨 연습 없이 즐거운 게임으로 하루를 즐기는 행사로 바뀌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며칠 전 가을 운동회와 학습발표회를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부모님을 초대하지 못하고 우리들만의 운동회를 했다. 이벤트 사회자의 진행으로 유~2학년, 3~6학년 두 번의 운동회를 열었다. 대규모의 웅장함은 없었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더 재미있다했다. 얼마큼 좋았냐고 물으니 백만점, 무한점이라는 셀 수도 없는 후한 점수를 줬다. 오후 학습발표회는 영상으로 찍어 부모님들이 보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하루종일 행사를 끝내고 교무실에 지친 선생님들을 보니 2년 전 선생님들의 운동회가 생각났다. 우리 학교는 운동회와 캠핑, 학습발표회를 겸해 1박 2일로 했었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신나게 게임하고 노래와 춤, 연주로 마음껏 끼를 펼쳤다. 덩달아 어른들도 신이 났고 학부모님들도 감동했다. 캠프파이어와 촛불놀이까지 끝내고 어른들이 돌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재웠다. 이틀째 프로그램을 끝내고 시끌벅적하던 학교에 정적이 감돌 때쯤 선생님들은 모두 기진맥진 지쳐 있었다.

방송을 했다. 남은 기념품도 나눠주고 수고에 감사할 겸 모든 교직원을 현관에 모셨다. 일정에 없던 일이라 왜 모이는지 궁금해했다. 그냥 끝내기 아쉬우니 게임을 하나 하자고 제안했다.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자기 신발 한 짝을 벗어던져 바구니에 넣는 게임이다. 학습발표회 레크리에이션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게임이었다. 보는 내내 우리 모두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았었다. 나도 모르게 한쪽 발이 들썩들썩했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쑥스러워하면서도 찬성했다.

단 한 번의 기회만을 부여했다. 어리둥절 모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몸개그를 하며 신발을 던졌다. 한쪽에서는 자기 신발로 연습까지 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청소여사님은 무려 세 번이나 기회를 드렸건만 큰 웃음만 주고 실패를 했다. 얌전하고 우아한 보건선생님이 맨 먼저 성공하자 반짝이 예쁜 슬리퍼가 좋아서 그렇다며 빌려 던지고 또 던졌다. 나도 발끝에 신발을 달랑달랑 흔들다가 머리에 이고 있는 바구니에 던져 넣었지만 내 몸 따로 신발 따로였다.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더니 선생님들은 아예 선생님들의 운동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1주일 후 오후 3시30분 모든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 모이기로 했다. 정작 경기를 시작한 것은 4시20분이었다. 퇴근도 미뤄가며 선생님들만의 운동회를 했다. 신발 던져 과녁점수판 맞추기, 손잡고 훌라후프만 옆사람에게 전달하기, 단체줄넘기, 공위로 전달했다 아래로 전달하기 그리고 청백릴레이까지 그 짧은 시간에 다섯 경기를 했다. 아이들의 운동회와 같이 두 팀으로 나누었는데 네 번째 경기까지 우리 팀이 이기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로 도저히 승부가 바뀔 수가 없게 되자 상대팀은 큰 점수 차이를 제안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두 명씩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이 포진한 우리 팀이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비록 짧은 30분간의 선생님들의 운동회였지만 참 많이 웃었다. 실수해도 웃고 쓰러져도 웃고 서로 우기고 웃고 넘어지고 웃었다. 어떤 조직이든 이렇게 함께 하는 웃음거리가 있어야 건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함께 노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도 잘하는 것 같다. 우리 선생님들을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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