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선거구획정 논란을 지켜보며

2016.03.02 14:00:07

윤진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선거구획정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보인다. 사실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자신이 후보로 나설 선거구가 어느 지역인지도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시점이 20대 국회의원 선거 43일 전이니 문제는 문제이다. 그런데 사실 유권자인 시민들에게는 선거구획정 문제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선거구를 정하는 문제는 민주정치의 기본 중의 기본이기도 하다. 선거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정치 지형이 완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4일자 칼럼에서 필자는 민주정치를 출범시킨 아테네의 클레이스테네스라는 정치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유력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알크마이온 가문의 사람이었고, 다른 귀족 가문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 대중과 연대하여 민주정치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와 알크마이온 가문이 정권을 주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행정구역 및 선거구역의 개편이었다. 그 때까지의 아테네의 구역들은 지역 단위이면서 혈연 단위이기도 했다. 오늘날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혈족들이 같은 지역에 몰려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구역 단위를 그대로 새로운 민주정치에 대입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당연하게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위세를 떨쳐왔던 귀족 가문들이 그 지역을 석권하게 된다.

이를 고민한 클레이스테네스는 완전히 새로운 편제를 고안해냈다. 그는 아테네의 전 지역을 10개의 부족 단위로 나누고, 각 부족에서 50명을 뽑아 500인 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500인 협의회가 일상적인 행정 문제에 책임을 지고, 시민 전체가 모여서 공무를 결정하는 민회의 의제와 결의를 준비했다.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것이 500인 협의회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명칭은 부족이어서 혈연 단위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은 구역 단위이기도 했다. 각각의 부족은 세 개의 트리티스로 구성되는데, 각 트리티스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국가 전체를 우선 내륙 지역, 도시 지역, 해안 지역으로 3분한 다음, 각 지역 들을 10개의 트리티스로 나누었고, 각 지역의 트리티스 하나씩을 부족별로 할당한 것이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우리나라 사정을 대입해 거칠게 비유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을 도시, 해안 지역, 내륙 지역으로 크게 나누고, 국회의원 선거구는 이 각 지역별로 하나씩 할당해서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A선거구는 청주의 한 구, 다른 도의 해안 지역 한 부분, 또 다른 도의 내륙 지역 한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어느 한 지역에서 기반이 탄탄한 후보자가 딱히 유리할 것도 없게 된다. 물론 이것은 고대 아테네의 일이고 현재의 우리나라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현대 민주정치는 지역구민의 여론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2천500여 년 전의 옛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렇듯이 민주정치가 자리 잡기 위해서 완전히 새로운 편제가 있어야 했고, 그 새 편제는 어느 한 지역의 이익이나, 그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는 가문 혹은 사람을 배제하는 데 나름 유용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선거구획정에는 국익이나 국민 전체의 필요가 아니라, 각 지역과 정당의 이해타산이 상당 부분 작용해 왔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완전히 틀을 바꾸어 뒤집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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