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위하여

2016.05.25 14:26:27

윤진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이 극단적으로 줄어 가고 있다. 보통 사회적 유동성은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하게 말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그리고 그런 일이 많은 사회는 사회적 유동성이 큰 사회이고, 그렇지 못할수록 사회적 유동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얼핏 보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유동성이 큰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하겠다.

누구에게나 노력하면, 그리고 능력에 따라서 신분이나 계층이 상승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판도라의 상자에 최후로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 희망이 없어진 사회가 발전해 나갈리 없지 않겠는가· '흙수저'로 태어난 내 처우가 나아질리 없는 세상, 내 자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한 없이 낮아져 0에 수렴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살아가겠는가? '묻지마 살인'이 나타나고, 사회에 대한 한없는 증오심만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필자가 전공하는 서양 고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고대 로마였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기에 사회적 유동성은 작지 않았다. 비록 귀족이 존재하는 계급사회이기는 했지만, 평민도 호민관이라는 평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직책을 거치고, 다른 관직들을 역임한 다음에는 집정관이라는 최고 행정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집정관을 역임한 후에는 심사를 거쳐서 로마의 귀족 계급 사람들이 모이는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원로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新人(homo novus)'라고 불리게 되고, 그의 가문은 귀족 가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로마가 공화정 시기에 계속해서 세력을 키워나가고, 결국 제국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와 같은 사회적 유동성이 컸던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여러 번의 전쟁을 거쳐 성장하는 와중에 지배층인 귀족과 평민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 같은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로마의 귀족은 뛰어난 평민은 자신들이 속하는 지배층에 받아들여 줌으로써 자체적인 '물갈이'를 계속 추구했고, 그럼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유지해 갈 수 있었다.

로마는 제국이 되면서도 한 동안은 그와 같은 기조를 유지해 나갔다. 물론 공화정 시기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하층민이라도 최고 계층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예를 들면 페르티낙스(Pertinax)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서기 193년에 석 달 동안 황제 노릇을 했다. 사실 그는 해방노예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노예 신분의 개인 교사였다가 해방된 후, 학교 교사로 일했던 사람이다. 페르티낙스 역시도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전 주인 가문에서 군 장교직을 주선해 주었고, 전공을 세워 승진을 거듭한 끝에 원로원 의원까지 되었고 결국 황제의 지위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극적인 계층 상승은 대단히 드문 일이고, 치열한 전쟁 같은 예외적 상황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분제 사회라고 알고 있던 고대 국가에서도 신분 상승이 사회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고대인들은 사회적 유동성이라는 용어는 몰랐지만, 신분 상승이 가능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흙수저, 7포세대 라는 용어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결국 미래를 떠맡을 사람들이 희망보다 포기를 먼저 배우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보다 많이 나오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가, 우리 자식이 희망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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