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팔러온 연암사 승려도 의병가담

1728년 무신란

2015.05.28 15:50:21

조혁연 대기자

[충북일보] "그대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가짜 청안현감 鄭重益의 반군에 가담한 임필현(林必玄)이 한 이 말은 당시 기층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말이었다. 토역일기 상으로 확인되는 반군 인물은 명현(命賢), 석창(碩昌), 몽엽(夢燁), 금립(今立), 시세(時世), 시만(時萬), 세강(世强), 반리(伴里), 임필현, 신평(信平), 차동(次同), 흥석(興石), 귀현(貴玄), 비억(非億), 명이(命伊), 성좌(性佐), 명이(明伊), 막남(莫男) 등 모두 18명이다.

이중 시세, 시강은 형제간이나 가까운 혈족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차동, 흥석, 귀현 등은 당시 청안현의 관노였다. 나머지는 신분을 알 수 없으나 느낌상 막동, 몽엽 등도 관노로 보여지고 있다. 각사등록, 영조무신별등록 등 1728년 무신란을 기록한 다른 기록에는 雄伊, 京元 등의 관노 이름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무신년 반군에 가담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하층민으로 '부역을 제외시켜주고 부역을 삭감시켜준다'는 꾀임에 빠져 참여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영조실록에도 등장한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 난역의 일로 말하면 군사를 모으는 적장이 반드시 신역을 면제하거나 신역을 줄여 준다고 말하므로 백성이 많이 응모하였다 한다. 이 일이 가장 급한데, 그 가운데에서 달아났거나 죽은 것을 죄다 충정해야 이웃이나 겨레붙이에게 끼치는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영조실록 4년 10월 11일자>

장담(張潭·?-1728) 등 청안현 의병 지도부는 임필현이 "돌아오라"는 설득을 완강히 거부하고 반란 진영으로 돌아가자 자신들의 토벌 계획이 탄로날 것을 염려하여 토벌계획을 가속화했다.

장담은 가짜현감 정중익이 창고의 곡식을 현민(縣民)들에게 나누어 줄 때, 의병을 그 무리 속에 가담시키기로 작전을 짰다. 그리고 장담은 자신이 선봉에 설 것을 자처했다. 이후 가짜현감 정중익에게 쌀을 받으러 갈 사람들을 모으니 70명이 됐다.

의병 지도부는 이들에게 각각 모난 방망이를 지급하고 곧바로 청안현청 인근에 다다랐다. 마침 이때 종이를 납품하러 온 연암사(蓮巖寺) 승도 6~7명도 지도부의 설명을 듣고 의병진에 가담했다.

조선시대 승려가 관청에 종이를 납품했다는 것은 다소 이채로운 내용이다. 현종 4년(1663)의 사원전 몰수로 조선 사원의 경제적 기반은 붕괴되었다. 그때부터 각 사찰은 자활의 방도로서 수공업 생산을 벌였으며, 나아가 이들은 민수(民需)를 대상으로 수입을 올리기 위한 가격생산에 들어갔다.

승려들도 사원노비의 노동에만 의존하지 않고 불자와 더불어 수공업 노동에 직접 참여했다. 사원수공업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지였고, 그 이유는 원료인 닥나무가 산중사찰 주변에 무성하였기 때문이다.

승려들은 지물제조의 수공업에서부터 나중에는 상인들과 결탁하여 직접 상행위까지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승직마쳐 버리고 독립 제지업자로 또는 지류상인으로의 직업을 전환하기도 하였다.

괴산 연풍면 원풍리의 한지박물관 모습

연암사는 당시 어디에 위치했던 사찰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괴산에 한지박물관(사진)이 존재하고 있고, 그곳 마당에 임각수 군수가 성불산에서 직접 캐왔다(?)는 전통 닥나무가 심겨져 있는 것은 우연치고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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