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2015.02.16 13:56:06

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조그맣고 피부가 까만 소녀의 별명은 까만콩이었다. 처음에 까만콩은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언니는 피부가 하얗잖아. 그런데 나만 까매. 엄마랑 아빠랑 언니는 쌍꺼풀이 있잖아. 그런데 나만 없어. 엄마랑 아빠랑 언니는 똑똑하잖아. 그런데 나만 멍청해. 아,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내가 엄마한테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분명히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고 하셨어. 천사 같은 우리 엄마가 나를 분명히 "주·워·왔·지"라고 하셨다는 건, 이건 뭔가 힌트일 거야. 까만콩은 이제 자기가 김 씨가 아니라 사실은 박 씨나 이 씨일 거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까만콩은 언니 몫의 햄버거까지 먹었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꾸중을 들은 그 날 밤, 자신의 진짜 핏줄 찾기 여행을 결심하였다. 바다로 가는 기차 안에서 까만콩은 서운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새 옷은 언니만 입었잖아. 맛있는 거는 언니 먼저 먹었잖아. 언니랑 싸우면 나만 혼났잖아. 이런 것이 모두 내가 김 씨가 아니라는 증거야. 아, 우리 진짜 부모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어쩌면 엄청난 부자일 지도 몰라.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를 삼 일, 결국 뭔가 수상한 열세 살 소녀 까만콩은 경찰에게 발견되어 버렸다.

"꼬맹아! 언제 가출했어?"

"가출, 아니거든요!"

까만콩은 자신의 숭고하기까지 한 핏줄 찾기 여행이 가출로 불리어지는 것이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부모님을 찾으러 가는 거거든요!"

"그게 가출이야. 꼬맹아!"

'가출이다 아니다'로 옥신각신 하던 중에, 경찰서 문이 확 열리더니 피부가 하얀 세 사람이 파도처럼 와락 까만콩에게 덮친다.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가 등을 도닥이다가, 눈을 흘겼다가 얼굴을 쓰다듬다가, 그렇게 정반대되는 감정을 1초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하던 엄마, 아빠, 언니가 까만콩을 반강제로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까만콩은 경찰서 마당에서 꺾은 코스모스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사랑한다, 아니다'를 세어 보았다.

"우리 까만콩은 할머니를 닮았어. 할머니 피부가 까마셨거든."

"아니에요. 까만콩은 이모를 닮았어요. 이모도 달리기를 잘했잖아요."

까만콩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깔깔 웃는 것이 싫어서 까만콩은 졸리지도 않은데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아우! 간지러워."

까만콩의 언니가 갑자기 어깨를 박박 긁으며 신경질을 낸다. 곧이어 까만콩의 아빠도 어깨를 벅벅 긁으면서,

"켈로이드가 또 발동하는군. 건조하면 더 그래."

그리고 그 때, 까만콩의 어깨도 간질간질 신호를 보낸다. 어릴 때 예방접종 주사를 맞은 어깨 그 자리에 어느 날부터 빨갛게 살이 올라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간질거리면서 자꾸만 커지던 흉터가 궁금해서 백과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켈로이드: 피부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에 비해 세포 증식이 과도하게 이루어져 상처 부위가 솟아오른 것으로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나 유전적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아, 그 켈로이드! 그거 나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아빠도 있고 언니도 있었어.

"진짜 피는 못 속인다니까."

어깨를 박박, 벅벅 긁고 있는 부녀를 보면서 까만콩의 엄마가 웃고 있다. 그리고 자는 척, 하지만 척만 하는 중인 까만콩도 슬며시 간지러운 어깨에 손을 가져가서 흉터를 살살 긁는다. 기분 좋은 흉터를 쓰다듬는다. 그런 까만콩의 얼굴에 자꾸만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나온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가 보다. 우리 까만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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