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었다. 형과 내가 외할머니 댁에 심부름을 가던 길이었다.
학교 담벼락에 기댄 노점상이 보였다. 리어카 널빤지 위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과자부스러기가 원색의 포장지에 싸여 도열해 있었다. 내 주머니에 동전 몇 닢이 있는 걸 알고 있던 형이 '또뽑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저씨, 우리 또뽑기 할게요!"
"그랴~!"
아저씨는 리어카 한 켠 바닥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작은 캐러멜처럼 생긴 과자 포장지 속에 조잡한 글씨의 '또'자가 새겨져 있으면 다시 한 번 뽑을 기회를 주는 게 '또뽑기'였다.
운이 좋았다. 처음부터 '또'자였다.
"아저씨, '또'자 나왔어요."
"오, 그려~? 한 번 더 뽑어~!"
아저씨는 칼을 갈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아이들 대하듯 흥이 실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다시 뽑았다. 또다시 '또'가 나왔다.
"아저씨, '또'자 또 나왔어요."
형과 나는 신이 나서 합창을 했다. 아저씨는,
"허허, 녀석들…. 그럼 한 번 더 뽑어~!"
역시 칼을 갈며 나이 차 많은 막내 여동생에게나 하듯 말꼬리를 길게 끌며 너그럽게 응수했다. 말끝마다 꼬리를 늘이는 품이 아저씨는 영락없이 충청도 원주민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눈이 오니 친구가 토끼 사냥을 해 온다고 약속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사냥해 온 토끼의 털이라도 벗기려는 것일까. 그 추운 날, 눈 속에서 아저씨는 계속 칼을 갈고 있었다. 우리는 희희낙락했다.
"자, 또 한 번 잘 뽑아 봐."
형은 거듭되는 행운에 형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은 것 같았다. 형이 달뜬 목소리로 친구처럼 내 어깨를 치며 채근했다. 나는 의기양양해서 가지런히 정렬돼 있는 캐러멜을 제법 그럴듯하게 꼬나보다가 한 개를 다시 골랐다. 또…, '또'자였다.
"야호! 아저씨, 또 '또'자유~!"
형과 내가 신바람이 나서 어느새 아저씨처럼 말꼬리를 늘이며 소리쳤다.
"……또, '또'자라구?"
엉덩이를 계속 추어대며 열심히 칼을 갈던 아저씨가 의심에 찬 목소리로 음산하게 되묻더니, 갈던 칼을 들고 물 묻은 손을 털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주변엔 아저씨와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는 더 이상 흥이 실린 목소리도, 정겨운 표정도 아니었다. 말꼬리를 끌지도 않았다. 형과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또'자가 새겨진 포장지들을 가리키며 침묵으로 결백을 증명했지만 아저씨는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의 눈앞엔 무서운 가면을 쓴 것 마냥 녹록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와 칼을 든 손만이 오락가락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들었고 그건 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우린…, 그만 갈게요."
기어들려는 목소리를 겨우 뽑아 올리고 나서 형과 나는 돌아섰다. 이만큼 와서 뒤돌아보니 우리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아저씨의 손에는 아직도 칼이 들려 있었다. 형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쩐지 운이 좋다 했지. 그건 그렇고 그 과자는 왜 그렇게 '또'자가 많았던 거지?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니네?"
형이 신음하듯 내뱉었다. 우린 마주보며 멋쩍게 웃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