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에게

2014.03.04 13:46:58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이 서방, 진급을 축하하네.

자네는 '진작 이런 소식을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송구하다'는 말을 했었지· 아닐세. 작년에 진급했더라도 물론 기뻤을 테지만, 금년에 이 소식을 들으니 훨씬 더 반갑게 들리는 걸 어쩌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네. 언제나 함께 해야 든든한 법일세. 또 우보만리(牛步萬里)란 말도 있지 않은가. 소걸음이 아무리 느려도 만 리를 간다는 말일세. 가정이나 직장도 하나의 공동체이고 보면 독주(獨走)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게 나의 소견이네.

여보게, 자네가 처음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를 기억하네. 얼굴과 키가 길쭉한 자네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굳어 있었지. '도둑놈!' 내 딸의 마음을 훔쳐간 자네는 실업계 출신이랬지. 나는 갈등했고 고민했네. 평생 편견이나 편애를 지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우리 사위'로는 용납하기 어렵더란 말일세. 국립대학을 졸업했다는 대목에서마저도 확신을 갖기가 결코 쉽지 않았네.

그 날, 딸아이가 인사를 시키겠다며 자네와 함께 나타났을 때 우린 이미 각오했었네. 무슨 말인고 하면 자네의 장인·장모가 될 우리 둘 다 독하지도 못하고, 맺고 끝냄이 분명해서 자식들의 혼사를 두고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되었다는 말일세. 반면 결혼은 결국 즈이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거기에다 자네가 언어 연수를 위해 거의 빈주먹으로 1년 간 호주에서 고군분투했다는 고행담은 카운터 펀치나 다름없었네. 소위 내 딸 밥 굶기지는 않겠다는 소시민적 계산이 나 자신을 굴복시켰던 거지. 나는 기꺼이 술잔을 내밀었네. "자, 내 술 한 잔 받게!"

여보게, 그간 자네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네. 참으로 고맙네. 우리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지. 더구나 자네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장기(長技)도 있지 않은가 말일세. 휴일이면 집에서 여러 가지 요리로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니 사랑받을 자격까지 충분하네그려. 형광등도 갈아 끼우지 못하고, 두꺼비집은 겁이 나서 더욱 열지 못하며, 환갑이 넘도록 세탁기 작동법조차 알지 못하는 이 가련한 인생에 비하면 자네는 소위 엄친아 수준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진급을 축하하네. 생각하기에 따라 대리 진급에 무어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러나 진급이란 노력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고 인센티브라 할 수 있을 걸세. 한편 한 계단 올라서면 그만큼의 포용력이나 통찰력도 갖추어야 하고 세상을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노파심으로 이해해 주게. 또 이런 계기가 왔을 때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자기 성찰도 따라야 하리.

이 대리, 이렇게 부르고 나니 왠지 부드럽고 친근감이 느껴지네. 다소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겠지만 유능하고 신뢰받는 일꾼으로서의 몫을 다해줄 자네를 기대하겠네. 늘 활기찬 삶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며, 이참에 손주도 하나 안겨 주면 더욱 고맙겠네. 늘 건강에 유의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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