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부활된 지방자치가 내년이면 20년에 이른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다. 하지만 우리 지방자치는 여전히 재정, 권한, 자율성 등에서 중앙집권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예산, 인사와 조직 등 지방자치를 상징하는 고유권한이 사실상 중앙정부나 상급자치단체에게 종속된 갑을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부단체장 임명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정권과 정부를 떠나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4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산,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 이 문제로 파열음을 냈다. 부단체장 임명권을 기초자치단체장이 행사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부단체장의 임명권은 자치단체장의 고유권한이다.
지방자치법 제100조 제3항에는 특별시·광역시와 특별자치시의 부시장, 도와 특별자치도의 부지사는 시·도지사의 제청으로 안전행정부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제4항은 시의 부시장, 군의 부군수, 자치구의 부구청장은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 보하되, 그 직급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며 시장·군수·구청장이 임명한다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법에 부단체장의 임용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광역자치단체장과 협의를 통해 상급단체의 인력을 기초자치단체에 임용해 오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도지사의 전횡, 형식상의 협의를 빙자한 인사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저질러지는 탈법적 악행은 기초지방자치단체 소속 인재의 등용을 상대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광역과 중앙 인사운영에 숨통을 트고자 지방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관행적으로 묵인돼 온 공직 내부의 이런 적폐(積弊)를 고칠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적폐만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단체장 임용제도의 대전제는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정신과 체제를 축소하거나 위협하는 견제도구로 악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평등성, 기회보장의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지방자치단체 4급 이상 공무원을 포함한 인재풀을 운영함으로써 다양하고 훌륭한 부단체장 요원을 양성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대상 인재들에 대해서는 일정 자격기준을 정하고 교육훈련과정을 도입하여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단체장 인사권 논란은 시도지사와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질 논란과 직결되는 문제다. 현행 지방자치법의 규정을 사실상 무시하면서 인사 전횡을 저지르는 시도지사에게 어찌 주민을 위한 참 자치 실천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제 밥그릇도 찾아먹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어찌 그 지역 주민의 복지와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대목이다. 2006년 당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윤주 군포시장이 소속 4급 공무원을 3급 부시장으로 임용했던 아주 당연하고 합법적인 권한 행사가 더 가치 있게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