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사육 중이던 오리가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로 지난 4일 최종 확진됐다. 축산과학원은 국내 축산연구의 심장으로 AI 발생 초기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 차단하고 철통 방역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이곳에도 AI가 발병해 사육 중이던 오리 4천500마리를 매몰했고 과학원 내 오염지역(반경 500m 이내)에서 사육 중인 닭 1만1천마리가 살처분 되면서 정부를 당혹게 만들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까지 뚫리면서 AI 발생을 방역에 실패한 지방자치단체나 농가 책임으로 돌리던 정부의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 쏜 꼴이 됐다.
첨단시설을 갖춘 축산연구 핵심 기관에서 AI가 발생하자 정부의 방역체계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아만 가고 있다. 또 반복발생 농가에 적용되는 살처분 보상금 삭감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도 거세지는 상황이다.
지자체와 농민들이 'AI는 재난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100%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하다. 살처분 보상비를 비롯해 방역초소 운영, 살처분 비용 등을 지자체와 농민에게 떠밀어선 안 된다고 축산과학원의 사례가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AI 바이러스가 철새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정부가 추정한 만큼 '재난'으로 처리해야 마땅하다.
AI 발생으로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50여일 만에 살처분한 닭과 오리의 수가 전국적으로 7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살처분 규모로 보면 국내에서 AI가 발생했던 최근 네 차례 중 2008년(1천20만5천마리)을 제외하고 이미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철새가 국내에 머무를 기간이 아직 남았음을 감안하면 이번 AI의 피해 규모는 지난 2008년을 웃돌 수도 있다. 2008년 이후 AI가 확진된 농가의 경우 보상금에서 일률적으로 20%를 삭감했다. AI가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방역에 과실이 있다고 간주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첨단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정부가 관리하는 축산과학원에서도 AI가 발생한 만큼 지자체와 농가에 책임을 떠넘긴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AI로 농민들은 시름에 잠겼고 계속된 매몰처분과 방역초소 근무 등으로 공무원과 군인들은 이미 극도로 지쳐가고 있으며, 지자체는 예산 부족에 신음하고 있다. 가뜩이나 복지정책 증가로 지방비 지출이 늘어나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형편이다.
음성군의 경우 현재까지 살처분과 방역초소 운영 등에 예비비 10억4천만원의 예산 중 10억원을 쏟아 부었다. 여기에 농가 보상금 70억원 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출혈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산 운영에 적신호가 켜져 신규 사업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은 고사하고 예비비 확보를 위한 추경을 해야 할 판이다.
AI와 관련해 쓰인 비용을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 또 가축질병은 쉽게 줄어들기 어렵고 피해액도 막대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AI나 구제역 등 보상금이 필요한 법정가축전염병이 포함되도록 가축재해보험제도를 손볼 필요도 있다. 지방정부와 농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고민을 덜어 주는 게 중앙정부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