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부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

2014.03.23 17:18:43

어려서부터 우리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좋은 일일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하고 싶은 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오른발, 왼발한테도 알리고 싶어한다.

얼굴 없는 천사가 지난 21일 충북대병원을 찾았다. 이 천사는 "불우한 환자를 위해 써달라"며 3천만원의 후원금을 내놓고 사라졌다.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다. 드러냄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게 핵심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초연함으로 자선을 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뜨겁게 보내는 이유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직업은 뭘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후원 한걸까'. 그가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했다.

기자는 그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후원의 자세한 내막을 물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자신의 얘기를 미담으로 포장하지 말아 달라"는 대답뿐이었다.

그의 음성은 단호했고 태도는 강경했다. 더 이상의 부탁은 실례였다. 불필요한 신상 공개는 익명의 선행을 이어가려는 그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병원 관계자들도 그에 대한 정보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기자, 전화 해봤어?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고맙게도 병원 관계자는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실, 병원에서 사람 한명 찾는 게 일이겠는가. 얼굴을 알아내고 신원을 밝혀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등의 물음은 과도한 관심에 대한 자성이라는 것을 병원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제한 것이다.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이렇듯 '얼굴 없는 천사'가 우리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이유는 말 그대로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얼굴을 갖게 되는 순간 익명의 신비감이 사라지고 사회적 감동은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선행의 진정한 동기와 가치조차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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