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란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분주해지곤 한다. 친지와 고마운 이웃들에게 자그마한 마음의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어머님 제사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다가오는 설이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친척들, 특히 조카들에게 어른으로서 보탬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자존감은 아닐 것 같다.
보탬이란 모자라는 것을 더하여 주는 도움이란 뜻으로 거창하게 기부라는 표현을 써가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보탬이란 표현이 더 마음에 가다 오는 것은 단어 속에 정감이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타인의 모자람에 조금 보태어줌으로써 마음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우리네 삶 속에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이 있다.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조상들의 삶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는 용어이다. 십시일반의 대표적 사례가 품앗이였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의 모내기, 김매기, 김치 담그기 등의 공동체 나눔이 지금의 기부문화로 이어진 것이다.
보탬에 대한 좋은 글 중에 "재물을 나누는 것은 조금 나누는 것이고, 지혜를 나누는 것은 많이 나누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 것은 모두 다 나누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탬 하면 우리는 물질의 보탬, 즉 기부금을 생각하곤 한다. 금전적 보탬이 현실적이며 가시적인 도움일지는 모르겠으나 보탬을 실천하기 위한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재능을 보태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음악이든, 미장이든, 도배를 하는 일이든 자신의 재능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시간적으로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는 자신의 전문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개인의 전문성들이 사회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어 맞물리는 나사와 같이 조합하여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보탤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하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듭해 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의 일원인 우리들은 자신의 재능을 조직이란 테두리 안에서 이미 나누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탬 하면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을 생각하곤 한다. 만약, 보탬의 범위를 넓혀 자신의 삶에도 한 가지를 보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하나의 보탬일지라도 나의 생활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며,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올해에는 자신에게 한 가지 보탬을 더하는 생활 속에서 이웃과의 나눔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