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미끄러진 '신혼의 꿈'

남편 잃은 20대 중국인 여성 안타까운 사연
동료 소방대원과 결혼 앞두고 다친 박석기씨

2011.01.02 19:44:59

지난달 30일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 빌라 화마(火魔)는 결혼 10개월 된 신혼부부와 결혼을 3달여 앞둔 예비부부의 행복을 앗아갔다. 중국인 신혼부부의 남편이 불에 타 숨졌고, 결혼을 앞둔 남자 소방관이 화재진압 도중 건물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중국인 남성 불에 타 숨져…"한 순간 날아간 신혼의 단꿈"

화재현장에 달려온 A씨가 소방관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4층에 우리 남편이 있다"며 울부짖고 있다. A씨는 직접 사다리를 타고 건물에 진입하려 했지만 소방관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강현창기자
오후 7시30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국인 A(여·27)씨에게 남편(24)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해 2월 중국에서 결혼한 뒤 한국에 건너온 중국인 부부. 남편은 평소와 달리 다급했다. "집에 불이 났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화장실에 웅크리고 있다. 살려달라".

부인은 숨이 터져라 집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늦었다. 집은 이미 불길에 휩싸였다. 남편은 건물 4층에 있었다.

"도와주세요. 남편이 4층에 있어요" 부인은 서툰 한국말로 소방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발은 동동 굴렀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부인은 "남편을 구해야 한다"며 건물 벽면에 설치된 소방 사다리로 달려들었다. 놀란 소방관들이 부인을 뜯어 말렸다.

소방관들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다. 일단 병원(청주의료원)에 가서 기다려라"며 부인을 오후 10시께 병원으로 이동시켰다. 소방관들은 30여분 전, 건물 3층 계단에 시신 1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0여분 후 소방관들이 건물 입구에 몰려들었다. 시신 1구가 옮겨졌다. 신원을 알 수 없을 만큼 불에 심하게 탔다. 청주의료원 영안실에서 중국인 남편의 시신으로 확인됐다. 부인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2월 중국에서 결혼한 뒤 그해 8월 한국에 들어왔다. 부인은 청주대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에 재학했고, 남편은 부인 학비 마련을 위해 얼마 전까지 청원군 내수읍 모 공장에서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조사를 받던 부인이 흐느꼈다. "중국의 시부모님께는 못 알렸어요. 충격 받으실까봐. 시부모님이 빨리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월 동료 소방관과 결혼 앞두고…동부119구조대 박석기 소방교 중상

결혼을 3개월여 앞둔 청주동부소방서 박석기 소방교가 불이 난 빌라 3층에서 떨어져 턱과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다. 박 소방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서 예비장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 씨를 바라보고 있다.

ⓒ강현창기자
결혼을 3달여 앞둔 소방관 커플. 이 중 예비신랑이 화재현장에서 인명을 구하다 크게 다쳐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청주동부119구조대 박석기(29) 소방교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30분께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에서 빌라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미 불길은 건물 4층까지 퍼져 있었다. 1층 입주민들은 모두 대피한 상황이었다. 건물 리모델링 공사로 2층과 3층은 비어있었다.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한 중국인 여성이 오열했다. 자신의 남편이 4층에 있다고 했다.

망설일 틈도 없었다. 박 소방교는 동료들과 불구덩이 안으로 뛰어 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온통 화염과 연기로 뒤엎여 있었다. 촉감에 의지해 계단을 오르던 찰나, 발이 미끄러졌다. 벽은 타서 없어진 상태였다. 박 소방교는 3층에서 바깥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청주 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턱뼈가 부서지고, 치아 10개가 부러졌다. 부러진 한 쪽 무릎 뼈는 피부를 찢고 튀어나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튿날 박 소방교는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은 잘 끝났지만 회복기일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뒤 "현장근무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들은 "박 소방교는 오는 3월20일 동료 소방대원과 결혼할 예정이었다. 며칠 전까지도 신혼 여행지와 사진촬영 등을 얘기하며 결혼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 임장규·강현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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