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과 한강

2024.10.27 17:20:31

이철호

소월문학관 이사장

미국의 여류 작가 펄벅(Pearl Buck).

그는 1931년에 쓴 소설 『대지(The Good Earth)』로 작가로서의 높은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리고 1938년에는 이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펄벅은 사회사업에도 관심이 깊어, 한국 혼혈아들의 구호사업을 위해 펄벅재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나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컸던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1962년에는 우리나라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쓴 『살아 있는 갈대』라는 작품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을 방문했다가 달구지에 모두 실어도 될 짐을 자기 등에 나누어지고 가는 시골 농부를 보고는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휴멀리즘」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 말은 인간 'hum'과 애니멀의 'mal'로 이루어진, 사전에도 없는 합성어이다.

펄 벅이 만들어 낸 이 합성어, 즉 「휴멀리즘」이란 말은 이제 인간애에 걸맞은 동물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는 예전에 농부가 꼴을 베어 가면서 자기가 몰고 가는 소등에 그 꼴을 얹지 않고 지게로 지고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기르는 소나 돼지, 닭, 개 등을 마치 가족처럼 여기며 정성껏 돌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도시 문명이 확산되면서, 한때 동물들을 학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가 다시 '반려'라는 이름으로 강아지가 자식과 같은 반열에 서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10일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 한강이 '한강의 기적'을 또 한 번 이루어 내는 순간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서정적 산문'이라고 하였다. 이문열은 "노벨 문학상은 세계 문학에 진입을 공식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벅이 어쩌면 '유순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로만 여겼던 곳에서 펄벅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한강으로 말미암아, 문학의 강국이 된 것이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까.

바라기는, 6·25전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제주4·3사건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았던가 눈으로 보고 들었다. 아직도 그러한 희생으로 가슴 아파 피눈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왜 그렇게 역사가 흘러갈 수밖에 없었는지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이 땅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분별력을 갖고 올바른 선택을 하며 안온하고 풍성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문학이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생명성을 더욱 고양시킬 수 있는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문학이 아닐까. 제2, 제3의 노벨문학상을 기대할 수 있는 문학 강국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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