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17.10.23 13:27:32

연순동

청주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나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 근처에 산다. 퇴직 후 1년까지는 그 곳을 지날 때 한 번 쳐다보면서 내가 근무하던 학교구나 했었다. 2년 차에 접어 들면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었다. 오늘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과거에 집착한다는 그 자체가 병이다.

가끔 아무도 없는 빈 방에 앉아 핸드폰을 기웃거린다. 전화 한 통 없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해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전화를 걸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 별로 없다. 모두 무엇인가에 바쁘다. 갑자기 차오르는 분노, 상실감, 관계 파괴감 등 복잡한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다. 40년 직장 생활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만 하다가 쉴 줄 모르는 바보가 된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본다. 나다운 나,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우리 엄마의 딸로서의 나 등 내가 자리 잡아야 할 위치는 많다.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나답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면서 모순된 시간만 헛되게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필요하다. 역할에만 충실하다보면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나와 교감하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과거에 묶인 노예가 되지 말고 내 자신이 바로 서서 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만 치중하다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며 헛된 낭비를 하게 되고 언젠가는 그렇게 소비한 엄청난 시간이 아깝다고 통곡을 할 날이 올 것이다.

나에게 충실하다보면 상대를 이해하는 시각도 넓어져 대인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 믿어 본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독서도 하고 정보도 많이 공유함으로써 응용력도 갖고 분별력도 높이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내용들은 미로와 같은 길이고 어쩌면 내일 다시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 그 끝에 초라한 나 자신이 또 보인다.

하지만 본래의 나를 찾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아니 꼭 해내야 하는 소중한 작업이다. 그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그 것은 나의 권리이다. 젊은 날 권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 같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농사를 짓는 나는 내가 생산한 것 외에 다른 것은 믿지 못하는 나쁜 습성이 생겼다. 산속에서 채취해 온 고추를 그냥 먹으면서 웃는다. 내 안에 저장된 습관적 사고와 무의식적 정서를 과감하게 깨뜨리고 솔직하게 살아가 보자. 고착화된 나쁜 생각, 상처와 애착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대화를 하는 공간과 사귐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요즈음 근사한 커피 숍이 많이 생긴다. 이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같이 풀어 낼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동반자 없는 여행은 혼란과 두려움만 가중될 뿐이다.

모처럼 경복궁에 왔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보지만 가슴을 열어놓고 이야기할만한 지인이 없다. 교수님께 전화 드렸더니 해외에 가 계신단다. 성공한 선배에게 전화했더니 수원에 가 계신단다.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관악산 둘레길 8시간 코스를 돌고 있단다. 아, 모두들 바쁘네. 나도 나를 찾았느니 바쁘게 움직여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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