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감사

2017.09.04 13:25:03

연순동

청주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지난 8월 주말에 무심천에서 한여름 밤의 콘서트가 있었다. 뒤늦게 정보를 얻은 터라 준비 없이 하상 계단으로 갔다. 얇은 종이 한 장을 깔고 앉으려는데 여고생이 두툼한 1인용 방석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야외용 깔판도 준비해왔다. 나는 감사하게 받아 깔고 앉아 연주를 들었다.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나오는 시간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어쩌나 하는 차에 식당 주인은 비닐우산을 내주며 그냥 가져 가라고 했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기분이 좋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랑을 느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달려오는 나를 보고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이웃이 고맙다.

한라산 등반길 숲속 향기에 묻어 번져오는 오이향을 맡고 목을 돌려 옆을 바라 보았다. 그 때 그 분은 오이 몇 조각을 건네 주었다. 지금도 오이만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

남편이 병원에 3개월 입원하고 있는 동안 여러 가지 별미를 해온 친구들이 있다. 그 때 정말 감사했었다. 그러한 관심 덕분에 지루한 병상 생활의 지루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을 터인데 이젠 모든 기억이 희미하다. 지나간 일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드는 생각은 작은 일에 감사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긴긴 장마 끝에 날씨가 활짝 개니 외국에 온 것 같은 새로운 기분이 난다. 베란다 끝에 놓여 있던 화분을 꺼냈다. 아마릴리스가 꽃을 두 송이 피웠고 꽃대도 세 대가 개화를 준비 중이다. 연한 분홍빛 꽃이 돌아가신 엄마를 본 듯 반가웠다. 우리 엄마는 꽃을 좋아하셨다. 여기저기 키우시던 꽃이 무관심 속에 피어나 우리를 울린 적이 있다. 이 꽃 원예종은 빨갛다. 우리집에 있는 것은 새악시같은 연분홍색이니 야생종이다. 우리가 없는 내내 침묵하며 겁쟁이처럼 다소곳이 집을 지키다가 늦여름 지친 일상을 위로하듯 피어난 것이다.

볕이 따갑다. 태양을 가리기 위해 딸 집에 들렀다. 급한 대로 선글라스와 모자 그리고 양산을 챙겨 가지고 나오며 시집 가서 나름 잘 살고 있는 딸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너무나 바르게 자라고 있는 외손자를 보며 초등교육의 위대함에 박수를 보낸다.

정보 보호를 위해 직접 만나서 이력서를 받겠다는 사람이 있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퇴직 후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피곤하면 휴식할 수도 있는 휴게 공간에 에어컨까지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공직에 있던 사람은 3년은 봉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 친구 생각이 난다. 진정한 봉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것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차제하고 가장 감사한 것은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릉계곡 쌍폭포 앞에서 체증을 다 털어내고 왔다. 내려오는 길에 무한 감사를 드렸다. 자연도 이렇게 사람이 와 주어야 빛이 나는 것이다. 강원 북부에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여 우산을 쓰고 용추폭포까지 갔다. 비가 많이 온 탓에 이름 나있는 용추보다 쌍폭포가 더 인기를 끌었다. 다람쥐를 스무 마리쯤 만났다. 이 곳을 지나 정선군 임계를 거쳐 서울을 갔다는 말이 그럴 듯하다. 이 길을 거쳐간 선비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을 했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는 어떤 보약에 비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연을 찾아 다니며 즐겁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생의 마감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면서 기쁘게 떠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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