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잔

2016.06.30 14:40:21

신현준

현대백화점 충청점 판매기획팀장

여름이다. 아침부터 올라오는 볕의 따가움이나 대낮에 온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열기뿐 아니라 이제밤에도 창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쉽게 잠을 잘 수 없는 때, 여름이고 삶도 그 속에 들어있다.

이 더위를 거스르거나 싸울 수 없기에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불과 옷들은 이미 교체했고 세탁과 함께 잘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에어컨 필터를 점검했고 선풍기를 꺼내 날개부터 먼지가 모이는 송풍구까지 깨끗이 닦았다. 이렇게 준비를 하니까 땀이 났다. 더위가 함께 올라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켰다. 아! 너무 시원했다.

생활 주기라는 2~3개월의 그림 속에서시원한 여름을 준비하는데, 지금 이 순간 마주친 여름 속에서 나에게 가장 시원함을 안겨준 것은 계획 속의 '여름 보내기'가 아닌 자연스레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작은 지금의 실체, 한 잔의 물이었다.

우리는 항상 계획을 하며 산다. 하루, 일주일, 한달, 1년, 그리고인생. 그 계획은 목표가 되어 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갈등, 극복을 통해 하나씩 성취해 나가고 중간에 수정을 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인생의 목표라는 커다란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게 삶의 전부인데, 가끔 너무 큰 그림을 보느라 내가 맞추고 있는 지금 이 한 조각의 곡선과 그 안에 담겨있는 그림의 신비함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끼워 맞추려는 이 한 조각이 어느 부분에 들어가서 역할을 해야 하는 미션도 중요하지만, 이 한 조각의 독립된 운명과 위치, 의미가 있을 것인데, 우리는 너무 큰 틀 속에서 작게 끼워지는 부속으로만생각해 각각의 조각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미안함을 갖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작은 조각은 순간순간 잊혀질지 모르는 내 인생의 소중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크고 넓게 보라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무를 보지않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속속들이 다 안다는 전제를 한 후에 숲을 봐야 한다는 의미가 생략되어 있다.작은 부분이 해내는 제 역할과 기쁨으로 인해 숲 전체가 오밀조밀 풍성해지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각론에 충실하지 못한 총론은 완벽할 수 없고 벽돌 한 장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훌륭한 건물은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 독립된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체가 되는 것은 일, 삶, 사람 등 어떤 것,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가치다. 그러기 때문에 길고 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오늘 하루는 매우 소중하다.

오늘 하루 고단한 업무 중 동료가 건네준 음료수 한잔, 와이프가 보내준 아이들의 웃는 사진 한장, 인터넷 자료 검색중에 눈에 들어왔던 메이저리그 김현수의 활약 등 이렇게 순간 지나치는 '계획없는 기쁨'이 오늘 하루를 힘내게 하는 것 같다.

까르페디엠(Carpe Diem). 오늘 하루도, 지금 걷는 이 길도,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이와의 이 시간도 하나의 작은 퍼즐 조각에 불구하지만, 지금 이때를 의미있게 해줄 나만의 시원한 물 한 잔을 찾자. 그 한 잔의 물 속에는 '당신, 단 한 순간이라도 행복을 위해 살아갈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 이라는 방울방울이 담겨 있다.

더운 여름, 긴 계획도 좋지만, 순간의 물 한 잔을 통해 시원하게지금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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