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플레인사우루스, 말레사우루스

2016.01.28 14:12:32

신현준

현대백화점 충청점 판매기획팀장

나에게는 다섯 살 된 아들과 이제 만 10개월이 된 딸이 있다. 큰 아들은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이 공룡을 매우 좋아한다.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겠으니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몇몇 동화책들과 예외없이 공룡 책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어린 여동생을 상대로 '너는 초식공룡이고 나는 육식공룡이야' 하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동생의 다리를 무는 시늉을 한다. 그 덕에 우리 집에서는 딸아이의 우는 횟수와 아이 엄마의 잔소리는 날로 늘어간다. 아, 나도 소득이 있다. 이전까지는 알로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벨로시랩터 등 몇 개만 알던 공룡의 이름도 아파토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스테고사우루스 등 제법많은 종류의 공룡 이름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특별한 공룡이 두 마리(?) 있다. 학명에도 없고 백과사전에도 없는 공룡인데, 바로 '에어플레인사우루스'와 '말레사우루스' 다.

그 정체는 다름아닌 공룡을 너무 좋아하는 큰 아들이 공룡을 닮은 큰 비행기 장난감에 '에어플레인사우루스'로 이름을 지었고, 지난 가을 말레이시아 여행갔을 때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공룡인형을 말레이시아에서 샀으므로 '말레사우루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나는 아들로부터 새로운 공룡 이름의 기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도저히 나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창조였고 창작이었기에.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추구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기발한 컨텐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접근방식, 아직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도전 등 창의적 사고를 통한 일의 추진과 이에 따르는 기대효과까지를 염두에 두고 고민을 한다. 혼자도 해보고 여럿 이도 같이 해본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는 것도 힘들지만, 어렵게 발굴한 것들을 제대로 추진하는 게 더 어렵다. 그 이유 중 대부분은 너무 '잰다'는 것이다. '잰다'는 것을 충분한 검토와 고민을 통해 책임질만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신중을 기하며 일을 추진하는데도 성과는 늘 만족스럽지 않다. 일이라는 것은 창의와 열정이라는 가슴이 시키고 계산과 신중이라는 머리가 통제하는데, 결과적으로 머리는 '신중의 함정'을 오류의 계산 범위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이 가져오는 리스크를 X축에 넣고, 이를 통해 얻는 성과를 Y축에 설정하면서 X와 Y과 만나는 지점을 성과라고 했을 때, 정상적인 틀에서는 X값이 클수록 Y값도 커지게 된다. 즉, 새로운 도전의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우상향되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게 되고 그 성과 또한 커지게 된다.

창조적인 일이 많아질수록 실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가중되어 힘들지만, 이때 느끼는 열매의 달콤함은 배가된다. 그러나 창의없는 '신중의 함정'은 이 모든 출발 자체를 원천무효 시키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전진없이 땀만 흘리는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되니 이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신중의 함정'은 신중 그 자체가 아니라 우유부단이고 복지부동이고 도전하지 않는 자의 그럴듯한 핑계이다.

나에게는 공룡을 좋아하는 아들이 있다. 아들은 공룡을 통해 동물의 세계를 배우면서 자기가 꿈꾸는 공룡과 세상을 꿈꾼다. 아들은 창조와 창의를 모른다. 다만 재는 것 없이 자기가 느낀 것과 자기 상상 속의 필요한 것들을 현실에 꺼내놓고 이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면서 행복해한다. 창조를 꿈꾸거든 창의를 통해 세상을 얻고자 한다면…. 너무 재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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