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명소 그림여행 - 김만수 작가 '사인암'

추억으로 생각하는 사인암

2014.11.06 15:31:04


불이 났다. 산과 거리에선 단풍이 타고 사람들의 가슴은 열병으로 불탄다. 가을은 추억이 많은 사람도, 외로운 사람도,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도, 쉬 잠들지 못하고 붉은 눈으로 밤을 밝힌다. 빨강색처럼 심오한 것이 있을까. 빨강처럼 강렬한 진심을 보았나. 누군가에게 이처럼 올인 하여 보았는가. 무언가에 이처럼 정열을 쏟아 보았나. 사람 입술이나 피 빛같이 짙고 선명한 온통 빨강의 세계가 정서를 자극한다.

화제畵題『추억으로 생각하는 사인암』을 대하면 주어 없는 글을 보는 것 같은, 강렬하고도 묘한 매력에 빠진다. 설명을 생략 한 채 작가는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하라고 말한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어딘가 응시하고 있지만 어디인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상상의 세계가 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의 처한 위치가 어둠뿐인 암전 상태의 극장이어도 좋고 끝없이 빙빙 돌아가는 미로여도 나쁘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저 빨강에게 속해 있을 뿐이다.

추억으로 생각하는 사인암

100*120cm 혼합재료 2014

ⓒ김만수
눈을 감고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어보자. 붉게 물드는 정서를 천천히 더듬어보자. 작가의 손을 통과하여 말로 내뱉기 어눌해질 정도로 당혹스러운 빨강의 제안을 받아들여보자. 체면에 이끌리듯 그림이 나를 만나기 위해 걸어오고 있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어딘가의 중간지대 같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이기도 한 자유로움이다. 고독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빨강과의 사이에 흐른 교감의 원천교류, 원동력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숨을 고르고, 단양에 실재하는 사인암 계곡을 찾아 인터넷 길을 나섰다. 사인암절벽을 휘감고 청류가 흐른다. 가을철사인암은 자연이 내놓은 절경이다. 하늘높이 치솟은 기암절벽이 여러 색깔의 비단으로 무늬를 짠듯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추사 김정희가 감탄한 곳이란다.『신선이 하나하나 꿰어 놓았을까.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역동易東 우탁이(禹倬, 1263-1342)지은 늙음에 대한 회한을 표현한 시조 탄로가嘆老歌중 한 수가 새겨진 시비도 근처 사찰입구에 있다. 생각하는 계절,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다.

추사가 감탄했다는 비단절벽 사인암을 활활 불태우며 작가는 무슨 말을 하는가. 작품은 우리에게 강물에 손을 넣어 그 강의 깊이를 가늠하는 방문객의 자세가 되게 한다. 붉음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극한은 무한의 현재진행형이다. 기본색으로는 스펙트럼spectrum이 가장 강한 빨강의 세계에서 감정은 거칠게 왕복한다. 조명을 켜는 대신 붉은 암전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은 붉은 어둠의 진흙을 더듬으며 그 사이에 깃든 아름다움의 근원을 보고야 말았다. 붉은 어둠의 마력, 어둡고도 선명한 아름다움을 잘 새겨두고자 생각을 멈추어본다. 그제야 얼굴의 살갗이 웃기 시작한다. 이마도 따라 웃는다. 빨강은 심리적으로 정열, 흥분, 적극성이지만 안전색채이기도하여 정지, 금지를 나타낸다. 선과 악이 한곳에 있듯, 극한으로 몰고 가던 붉음, 결국은 소화기와도 같이 과속의 광기狂氣어린 감정여행을 차분함으로 귀결시켰다.

/ 임미옥 프리랜서

김만수 작가 프로필

-청주대학교 졸업
-청주대학교 대학원졸업
-개인전11회
-단체전 다수
-충북인문자연진경전
-제주 충북교류전
-촉각전
-섬 내륙풍경전
-08갤러리 김만수전
-충북민예총 부회장역임
-충북미미협회장역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
-충북대 미술과 강사역임
-청주대공예과강사역임
-현 전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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